이미지를 받았DA!
루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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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boiled Soul M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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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에게서
가장 멀고
가까운 것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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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벌써 다 처리하고 온거야?”
그 특유의 유쾌함은 여전했지만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는 키리
의 표정은 아주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이야~ 아니 난 좀 더 빨리 갔다 오려고 했는데 말야. 그다지
익숙한 곳은 아니라서 좀 시간이 걸렸네?”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레인저는 빙긋 웃는 얼굴로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 태도와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키리의 주위
를 지나치던 이들이 한번씩 돌아볼 정도로 처참했다.
입에 물고 있는 담배는 피에 절어 붉게 물들어 있고 걸치고 있
는 다크레드 빛의 마리너 수트는 여기저기가 찢겨진 채 그 빛이
훨씬 짙은 적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몸의 여기저기에는 베이고
긁힌 상처가 아직도 피를 스물거리며 뱉어내고 있는 것은 애교
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 있는 상처를 본다면 그 옷을 적시고 있는 붉
은 피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저 피가 누구의 것인지는 너
무나도 뻔했다.
“혼자?”
“당연하지. 내가 누구한테 손 벌릴 만큼 실력이 떨어져?”
키리는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레인저의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
쓱거렸다.
“흐응, 입만 산 줄 알았더니 제법이야.”
“아하하, 이거 왜 이러셔. 내가 저기 아래에 죽치고 있는 알베
르토랑 같다고 하려는 건 아니지?”
키리는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웃고 말았다.
사실 그의 이름은 이 근방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었다. 꽤나 실
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스페라도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있던
레인저. 그는 그 데스페라도라는 이름이 단지 허울뿐인 호칭이
라고 하며 비웃곤 했다. 어차피 쓸데없는 허식 없이 끝나는 일
발 승부에 그런 호칭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찾아온 것이 오늘 아침. 평소와 같이 웃고 있는 얼
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키리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말했던 모
든 것을 뒤집어엎는 것과 같은 말을 꺼냈다.
‘데스페라도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
애초에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때문에 키리는 다른 레
인저들에게 했던 것처럼 순순히 그 방법을 알려줬다. 다른 이들
과의 대결. 자신의 힘의 증명. 그리고 그는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는 지금. 웃는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키리는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태연히 말했다.
“그래, 이제 당신은 데스페라도라고 불릴 자격을 갖췄어. 하지
만 말야, 내 마지막 질문에 답하기 전에는 내가 그걸 인정해주
지 않을거야.”
“뭐야, 질문?”
이제 데스페라도라는 호칭을 눈앞에 둔 레인저는 무슨 말이냐
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가 알고 있기에 키리는 다른 레
인저들에게는 그런 조건을 건 적이 없었다.
“질문이라?”
하지만 그는 빙긋 웃으며 다 타들어가는 담배꽁초를 발아래에
떨군 후 발 끝으로 문질러 끄며 답했다.
“그래, 뭔데? 나 급하다구 누님. 빨리 말해봐.”
너무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태도에 키리는 살짝 놀
랐다. 겉보기에는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신사 같지만 사실 자신
의 안에 있는 생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고독한 사내.
대체 무엇이 그 허울뿐인 데스페라도는 호칭을 거부하던 레인
저를 몰아새운 것일까.
천계에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이의 일에는 관심을 주지 않던 키
리도 그것만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데스페라도가 되려고 하는거야?”
예상 밖인지 예상대론지 알 수 없는 그 질문에, 그 레인저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
“네가 루벨릭인가?”
“아?”
노스마이어로 통하는 뒷골목. 배신자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사
일록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씹어대고
있던 루벨릭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뚝뚝하다 못해 골
렘이 내는 것 같은 목소리긴 했지만 분명 그 목소리의 정체는
인간. 아라드인이었다.
한 손에는 자신의 키만큼이나 크고 두꺼운 낡은 대검을 들고
눈에서는 어떠한 수단으로든 숨길 수 없는 붉은 안광을 숨기기
위해 붉은 머리칼을 내려 가리고 있다. 한족 팔에 늘어트리고
있는 사슬은 붉게 뒤틀린 귀수를 봉인하기 위한 수단. 넘쳐흐르
는 혈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피부빛은 피와 같은 적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 간단한 특징만을 봐도 그가 이 아라드의 귀검사들 중에서도
피에 굶주린 미친 검사라고 불리는 이들. 버서커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던 루벨릭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루벨릭이라면 아까 저 아래로 내려가던데. 슈시아 누
님네 주점에나 한번 가보지 그래? 형씨.”
그런 광인들과 어울려봤자 귀찮은 일이 생길 뿐.
아니, 정확히는 언제나 같이 팀을 이뤄도 자기 힘도 제대로 쓰
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쓰레기같은 여행자들은 귀찮을 뿐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루벨릭은 혼자 행동했다.
그때 태연하게 너스레를 떠는 루벨릭의 말에 답하듯 뭔가가 그
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읏?!”
루벨릭은 재빨리 양 팔을 땅에 댄 체 몸을 회전시켰다. 고속으
로 회전하는 천계인 특유의 긴 다리가 그를 향해 날아들던 대검
을 쳐냈고 그 대검의 주인과 루벨릭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살짝
미끄러졌다.
재빨리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루벨릭은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푸른빛의 눈동자로 그 붉은 머리의
버서커의 머리를 꿰뚫듯 노려봤다.
“갓챠!”
리볼버가 불을 뿜으며 일절의 감정도 가지지 않는 차가운 강철
의 탄환이 그대로 앞으로 내달렸다. 싸움에 흠취하면 자신의 몸
조차 돌보지 않는 버서커가 상대라면 팔다리를 노려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째서 이런 싸움이 벌어졌는지는 이미 상관없었다. 그 버서커
와 자신은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싸움을 시작했고. 지
금 순간에는 그것이 전부였다.
“히익!”
겨우 싸움을 눈치 챈 샤일록이 저 멀리 달아나자 그 주위에 있
던 이들도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루벨릭은 달아나는 갤러리들
을 힐끔거리며 재빨리 왼손에도 리볼버를 빼들었다.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헤드샷을 가드로 막아낸 그 버
서커는 어느 새 뽑아든 혈검을 옆으로 눕힌 채 루벨릭의 허리와
머리를 동시에 노리며 막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Show Time!”
리볼버의 원형탄창이 맹렬히 회전하며 그 약실에 들어있는 총
탄들이 루벨릭의 주위에 흩뿌려졌다. 그 총탄들은 그 버서커의
육체를 꿰뚫고 그가 휘두르고 있는 혈검과 대검을 후려갈겼다.
루벨릭은 살이 찢겨나가는 상황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그 버서커를 향해 혀를 차며 재빨리 리볼버의 약실을 비웠다.
난사로 인해 비워진 탄창을 채워야 했다.
“싸움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장비만을 내세우는 실력 떨어지는
놈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약실에 빠르게 총탄을 채워 넣고 있던 루벨릭의 몸이 멈칫거렸
다. 루벨릭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던 그 버서커는 어느 새 그에
게서 약간 떨어진 곳 까지 물러나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일단….”
잠시 멈칫거렸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콤마 몇 초도 되지 않
는 짧은 순간 리볼버의 약실에는 총탄들이 채워졌다.
“싸움을 시작했으면 끝내야지. 안그래?”
루벨릭은 그 버서커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멋대로 공격
을 중지한 그를 향해 외쳤다.
“칼 들엇! 설마 자살하고 싶어서 달려든 건 아닐텐데? 형씨!”
가차 없는 총알이 다시 한번 그 버서커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그 버서커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검을 쳐들어 자신의 앞을
막아 그 총알을 튕겨냈다. 그리고 두 번째 탄환을 쏘려 하는 루
벨릭을 향해 말했다.
“나도 강자를 찾고 있었다.”
“하!”
두 번째 탄환이 날아들었다. 버서커는 자신의 어깨를 얇게 가
르고 뒤로 튀어가는 탄환을 스쳐 앞으로 뛰어 세 번째 총탄을
쏘려 하는 루벨릭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루벨릭은 재빨리 무릎을 올려쳐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 버
서커는 내장을 뒤흔드는 무릎차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
을 거칠게 틀어잡았다.
쓰으으으…!
혈관을 도는 피가 미쳐 날뛰며 상처 없는 피부를 통해 스며 나
온다. 루벨릭의 몸에서 튀어나온 그 피는 다음 순간 그의 목을
잡고 있는 버서커의 몸 안으로 빨려들었고―
콰앙!
작은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깨 루벨릭의 몸은 뒷골목의 쓰레
기 더미에 처박히고 말았다. 루벨릭은 고개를 흔들어 머리위에
늘어진 생선뼈를 치워내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거….’
상대방의 혈기를 뽑아 자신의 몸에 주입 한 후 그것을 다시 손
바닥에서 뿜어내는 버서커들의 기술 블러드 러스트. 혈기를 흡
수한 그 버서커는 조금 전보다 한층 더 흉흉한 귀기를 내뿜으면
서도 묵묵히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꽤 괜찮은데!”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돌며 몸의 여기저기에 느껴지는 통증을
옅게 지웠다. 눈앞의 저 버서커는 좋은 무기와 힘만으로 밀어붙
이는 그저 그런 모험가들과는 분명 달랐다.
그 버서커는 루벨릭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너는 네가 나 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나?”
“당연하지!”
“좋군.”
순간 그 버서커의 몸 주위에 떠돌던 혈기가 지워졌다. 그는 한
쪽 무릎을 땅에 디딘 채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루벨릭을 향해
혈검이 사라진 왼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당분간 같이 어울리지 않겠나?”
“뭐?”
갑자기 이름을 묻고 칼을 들이대놓고는 이제 와서 어울리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인간관계의 발전진행방향을 생각해보
면 옳은 순은 아니다. 서로 인사를 한 후 목적을 묻고….
“…아하하하하!”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루벨릭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그런게 뭐가 어쨌단 말인가? 그런 상식적인 상황이라도 하더라
도 자신은 거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을까?
“하….”
웃음을 멈춘 루벨릭은 버서커의 손을 빌리는 대신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는 갑자기 리볼버를 쳐들고 버서커의 머리를 겨눴다.
그 버서커는 자신의 이마 정 중앙에 총구를 들이댄 루벨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이나 조용히 상대방의 머리를 겨누
고 있던 루벨릭은 살짝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음~ 저기 있잖아 형씨. 그럼 죽여도 돼?”
“죽일 수 있다면.”
지독히도 덤덤한 그 대답이 너무나도 재수 없었지만 동시에 미
칠 듯이 끌렸다.
싸움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강자를 찾아서 돌아다니며 남이
보기에는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한다. 그런 면에서 레인저의 삶
은 버서커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인저와 버서커의 최
종적인 목표를 보자면 그 차이는 극심했다.
버서커는 오직 싸움에서 환희를 맛보며 목숨을 던지고, 레인저
는 싸움에서 살아남는 환희를 맛보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버서커는 분명 달랐다.
“좋아, 쿨한데.”
루벨릭은 그 버서커의 머리에서 리볼버를 거뒀다.
자신만의 힘에 취해 정신이 나가버린 미친 귀검사라면 이렇게
싸움을 멈출 정신조차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 버서커의
실력은 자신과 대등한 수준.
그렇다면 같이 놀아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내 이름은 알고 있는 것 같던데. 형씨는 이름이 뭐야?”
버서커는 앞으로 내밀고 있던 손을 거뒀다.
“데들리 더 블레이드. 블레이드라고 불러라.”
핸돈마이어의 뒷골목.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블레이드와 루벨
릭은 동시에 무기를 쳐들고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분간 노스마이어의 도둑들에게 이를 갈게 할 최악의 콤비가
그렇게 결성되려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크악!”
매드니스 단원 하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몸이 네
조각으로 분리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
어버린 동료를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던 매드니스
단원들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 그 한 명의 버서커를 향해 달려들
었다.
“내가 저놈을 잡고 있겠어!”
한 명의 단원이 온몸의 힘을 끌어 모은 채 앞으로 내달렸다.
막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다른 단원을 향해 고어크로스를
내지르던 버서커는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앞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어딜!”
양 손을 앞으로 내뻗은 채 블레이드를 잡으려 하던 단원은 갑
작스럽게 누군가 자신의 다리를 걸자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
고 말았다. 그는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음 순
간 뭔가가 자신의 가슴을 밟자 그대로 뻗어버렸고―
“A.D.I.O.S.”
다섯 발의 총탄이 단원의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자식이!”
그런 루벨릭을 향해 또 다른 단원이 짧은 단도를 휘두르려 했
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뒤에서 포탄같이 날아온 또 다른 단원의
육체가 그의 몸을 밀어내며 한덩이가 되어 저 뒤로 뒹굴었다.
“3초만 끌어라.”
“누구한테 명령이야?”
“부탁하지.”
루벨릭은 피식 웃으며 자신과 블레이드를 향해 달려드는 매드
니스 단원을 향해 전광석화와도 같은 킥을 날렸다. 단원이 배
를 움켜잡은 채 뒤쪽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며 루벨릭은 뒤를 향
해 소리쳤다.
“어이 3초 지났…야?!”
어디에도 블레이드의 모습은 없었다. 루벨릭은 당황했지만 그
다음 순간 뭔가가 루벨릭의 앞머리를 스치며 그대로 땅에 격돌
했다.
콰아앙!
혈기가 듬뿍 휘감긴 대검이 바닥을 내리치자 겨우 정신을 차리
고 앞을 향해 달려들던 단원들은 땅을 울리는 강렬한 진동에 다
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자식들이! 썩 돌아가….”
바닥을 뒹굴면서도 거칠게 소리치던 단원은 입을 다물고 말았
다. 갈라진 땅의 틈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 땅이 머금고 있던 수
많은 모험가와 단원들이 흘려내린 혈기가 블레이드의 혈기에 반
응하며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악!”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비명을 내지르는 것 뿐. 단원들은 저주
받은 혈기에 갈가리 찢겨지며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여기도 금방이겠는데?”
“음.”
블레이드는 자신의 몸 주위로 모여드는 혈기를 빨아들이며 가
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둘이 있는 곳은 노스마이어의 던전
에서도 두 번째. 유혹의 마을 하멜른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원래 노스마이어는 상업으로 번창하던 도시. 하지만 전염병이
퍼진 후 주민들이 몰살당하자 벨 마이어 공국에서는 그 전염병
의 원인을 조사하고자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무사하게 돌
아온 이들은 극히 소수였다.
생존자들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는 단 한 명의 주민이나 그들의
시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이상한 기술을 사용하는 매드
니스 도적단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했다. 벨 마이어 공국은 결
국 모험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수많은 모험가들은 노스마이
어에 들어가 매드니스 단원들과 싸우며 단서를 캐내고 있었다.
한달 가까이 노스마이어에서 진치고 있던 블레이드와 루벨릭은
타락한 도둑 묘진을 쓰러트린 후 이상한 피리소리에 대한 정보
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을 피리소리로 홀리는 질병의 디레지
에의 종 피터 더 파이퍼. 매드니스 단원들도 그 피리소리에 홀
려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피터 더 파이퍼만 남았군.”
“그러게, 얼마나 쿨 한 놈일지 기대되는데? 이 꼴을 보면 별로
기대 할 것도 없어보이지만.”
블레이드의 중얼거림에 루벨릭이 익살스럽게 답했다.
둘은 그 피터 더 파이퍼를 찾아내 족치기 위해 유혹의 마을 하
멜른에 들어오게 되었고, 역시나 매드니스 단원들과 거대화 된
수많은 쥐 때.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 슈와 락샤가 그들을 맞이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도 없었다. 두 모험가의 앞을 막아선 대가로
인해 하멜른의 여기저기에는 죽은 쥐 시체와 매드니스 단원들의
고기조각이 널려있을 뿐이었다.
“가자, 이제 피터 밖에 안남았으니까. …블레이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만들어놓은 피구덩이 한 복판에서 블레이드는 머리를
숙인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이, 왜 그래?”
“오지…마라.”
루벨릭은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던 감정이 담긴 블레이드의 목소리. 그는 진심으로
루벨릭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고, 루벨릭은
가만히 블레이드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피가 마치 뿌리에 스며드는 빗물같이 블레이
드의 발을 타고 올려 그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너….”
대검의 끝을 땅에 박은 채 숨을 고르고 있던 블레이드가 고개
를 들었다. 자신의 안광을 막기 위해서 뒤집어 쓴 가면이 그의
얼굴의 반쪽을 가리고 있었다.
“가지.”
다시 돌아온 블레이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루벨릭
은 앞서서 걸어가는 블레이드의 뒷모습에 손을 뻗었다.
“야, 블레이드.”
블레이드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계속 있다가는 다른 적들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버서커와 이렇게나 오랫동안 지내본 적은 없었기에 버서커들이
다 그러는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블레이드는 전투가 끝나고
나면 가끔 저렇게 발작하는 경우가 있었다.
“좀 낮간지러운 소린데. 우리 한 팀이지?”
루벨릭의 말에 블레이드는 침묵했다. 가면 아래의 표정이 어떻
게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저번에 달빛 주점의 슈시아에게 넌지시 물었을 때 그녀는 불길
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혈기를
내버리는 버서커들의 생명은 극히 짧다고. 블레이드와 같이 오
랫동안 살아남은 버서크들은 한계에 다다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너 말야. 슬슬 한계 아냐?”
“아직 멀쩡하다.”
하지만 루벨릭은 그걸 비밀로 했다. 블레이드는 자신의 베스트
파트너. 그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진
않았고 괜히 이리저리 쥐새끼같이 촐싹거리는 행동을 한다고 알
려지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버서커로서 너 괜찮은 거냐는 거야.”
“……….”
“보통 버서커들은 그렇게 오래 못 산다면서? 싸우는 것도 싸우
는 거지만 혈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블레이드는 대답하는 대신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루벨릭은 황급히 그 뒤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그런거라면 뭔가 대책을 찾아야 되는 거 아냐? 너랑 못 싸우
게 되면 나도 재미없고. 그…너도 손해잖아?”
“이미 대책은 찾은 상태다.”
“뭐? 정말?”
“그래.”
짤막한 대답에 루벨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
무 말도 없이 한참동안 걷던 블레이드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귀검사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응? 뭐가?”
블레이드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다. 때
문에 루벨릭은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그
런 루벨릭의 생각이 어떤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길게 말을 꺼
내기 시작했다.
“네가 거너가. 레인저가 된 건 네 의지였지.”
“당연하잖아?”
루벨릭은 말이 많았다. 그동안 말을 할 대상이 없었던 반작용
인지 비록 상대방이 골렘 만큼이나 말수가 적은 인간이라고 해
도 그는 여러 가지 말을 하기를 좋아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천계의 일이었다. 황도에서 태어났고 가족
은 두 부모님과 동생이 하나 있다는 것. 후에 황도를 노리는 카
르텔들과 싸우다가 위기에 빠져 무작정 뛰어내리자 바다였고 사
실 그것이 아라드에서 말하는 미들오션이었다는 것. 자신은 그
미들오션을 뚫고 아라드로 내려온 천계인이라는 것 등등.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일을 생각하던 루벨릭의 귀에 자조하는 듯한 블레이드
의 말이 스며들었다.
“귀수를 제어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을 때. 나
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매달려져버린 거지.”
가족을 죽였다고?
말문이 막힌 루벨릭은 침묵했다. 귀검사들이 어떤 증상에 시달
리는지는 알고 있었다. 왼팔의 귀수를 제어하기 위해 쇠사슬을
달아야 하는 것. 잘못하면 그 귀신에 씌어 미쳐버린다는 것. 평
생 동안 귀검사들은 그 귀신을 막거나 혹은 동화해 살아야 한다
는 것.
이미 둘은 발을 멈추고 있었다.
“너는 네가 싫어하는 인간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한 마리 늑대
와 같이 고독하게 지냈지.”
“…그래.”
우울한 어투다. 루벨릭은 자신의 말투가 어떻게 들릴지 알면서
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묵묵히 자신
의 말을 이을 뿐이었다.
“나는….”
블레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대검을
자신의 옆을 향해 십자형으로 휘둘렀다.
“키이익!”
십자형으로 뿜어진 붉은 혈기가 블레이드를 덮치려 하던 큰 쥐
를 한순간 공중에 묶었다. 그리고 곧 그 혈기는 앞으로 전진하
며 그 큰 쥐의 몸에 깊숙한 십자 상처를 만들었다.
재빨리 검을 휘둘러 큰쥐의 숨통을 끊은 블레이드는 저 앞을
노려보았다. 거기서는 희미한 피리소리와 함께 수많은 쥐들이
꿈틀거리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나중에 말해야겠군.”
쥐떼의 뒤로 루벨릭보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집의 사내가 서
있었다. 온통 보랏빛의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보라색의 챙 모자
를 깊숙이 눌러 써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몸 주위에서 불길한 귀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 사내는 입에서
피리를 때고 블레이드와 루벨릭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흥, 별로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군요.”
“그런가.”
네가 더 달갑지 않다. 블레이드는 마치 그렇게 말하듯 눈앞에
나타난 쥐떼와 피터 더 파이퍼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제기랄, 이 자식 또 가짜야!”
루벨릭은 수백 마리의 쥐 더미가 되어 흩어지는 피터 더 파이
퍼의 시체를 보며 외쳤다. 둘의 곁에는 수십 마리의 돌연변이화
된 거대한 쥐의 사체가 쌓여있었다. 그 쥐 때와 피터를 처리하
기 위해서 둘은 꽤나 큰 상처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인 것은 그
피터가 가짜였다는 것.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 씩이나.
그로 인해 둘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게다가 빠져나가
려 하는 길 마다 쥐떼들과 미친 매드니스 단원들이 달려들었다.
그 괴물들과 도적들은 둘의 앞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진
않았지만 착실히 둘의 몸에 피로를 쌓이게 하고 있었다.
“너무 쉽다고 생각했더니만…야, 블레이드. 괜찮아?”
루벨릭은 얼굴을 문질러 얼굴에 튄 쥐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돌
렸다. 거기에는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블레이드가 이를 악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아.”
블레이드는 휘청거리면서도 괜찮은 듯 태연히 몸을 일으켰다.
‘한계인가.’
프렌지의 효과로 인하여 상처 입은 적들의 몸에서 혈기를 흡수
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미 몸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였
다. 몸의 피가 빠져나갈수록 그 고통이 힘으로 변하는 버서커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적을 제거하는 것은 훨씬 수월했지만 그
럴수록 정신의 끈을 잡고 있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삐리리리릭~
그때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피리소리에 블레이드는 이
빨을 막물었다. 루벨릭은 혀를 차며 그 피리소리가 들려온 곳으
로 고개를 돌리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뭐야 저거? 아까 처리한 쥐머리 슈랑 락샤까지 있잖아!”
그 말대로였다. 사방에는 수많은 쥐 때들은 물론 쥐머리 슈와
락샤. 그리고 맨 뒤에는 피터 더 파이퍼가 피리를 불며 서 있었
다. 가만히 피터 더 파이퍼를 노려보던 블레이드는 가면 안쪽의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저게 진짜일 가능성이 큰 거군.”
“응? 아아,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
블레이드는 대검을 질질 끌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옆으로 손을 내뻗으며 남아있는 정신을 그 팔에 집중했다.
“Rave Storm!”
앞으로 내뻗은 블레이드의 손을 중심으로 진홍빛 회오리가 앞
으로 뻗어나갔다. 앞으로 내달려오던 수많은 쥐떼들은 블레이드
가 만들어낸 블러디 레이브에 휘말려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크앗!”
기합성과 함께 붉은 혈기의 검이 회오리에 휘감긴 쥐떼를 일순
간에 내리 갈랐다. 블러디 레이브에 온몸이 찢겨져 있던 쥐떼들
이 절명하는 순간, 그 자잘한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그
대로 블레이드의 몸에 스며들었다.
“후우.”
숨을 고르듯 블레이드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온 몸에 부족
한 피가 돌기 시작하자 정신이 약간 맑아져 왔다. 블레이드는
리볼버를 양 손에 쥐고 자세를 잡은 루벨릭을 힐끔거리다가 앞
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많은 쥐떼들과 함께 쥐머리슈, 락샤, 그
리고 피터 더 파이퍼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둘 다 당한다.’
블레이드는 피에 젖어 뒤틀린 왼쪽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
신의 몸에 돌고 있는 혈기의 양을 측정했다.
“지금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응? 뭘?”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이쪽이 끝나는 거겠지. 루벨릭.”
루벨릭의 말을 무시하듯 중얼거리던 블레이드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루벨릭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넌 나보다 강한가?”
한달 전 맨 처음 칼과 총을 마주 댔을 때 블레이드가 했던 질
문. 루벨릭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 그 후에도 나랑 싸워서 한번
도 이겨본 적도 없으면서. 아, 뭐 나도 못 이겼지만. 그건 내가
봐줘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갑자기 왜?”
가면 아래의 입이 살짝 올라갔다.
“날 죽일 수 있겠나?”
“뭐?”
“나를. 죽일 수. 있겠냔…말이다.”
또박또박 힘을 실어서 내뱉는 블레이드의 목소리가 깊게 떨리
고 있었다. 마치 그건 그의 정신이 뭔가를 향해서 최후의 저항
을 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크으으….”
순간 그의 몸 주위로 강렬한 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서슬
시퍼런 싸늘한 혈기의 출현에 둘을 향해 걸어오던 피터 더 파이
퍼 마저 걸음을 멈췄을 정도였다.
EXTREAME OVERKILL.
루벨릭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형체 없이 블레이드의 몸 주위를 맴돌던 혈기가 점차 고체화되
나 싶더니 거대한 검의 칼자루의 모습을 취한 것이다.
“뭐, 뭐야 그건?”
블레이드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
가기도 소름끼칠 정도로 흘러나오는 짙은 혈향을 휘감고 있던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 중얼거림에는 지극히 인간다운 감정이 스며있었다.
한 걸음. 아주 천천히 블레이드는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
고 또 다시 한 걸음. 또 한걸음. 걸음이 계속 될수록 그의 발걸
음은 빨라졌고 이윽고 그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Outrage Break!"
혈기가 스민 대검이 땅을 내려치고 거기에서 피어나온 혈기가
화살과도 같이 위로 솟아오른다. 혈기의 화살이 수많은 쥐들의
몸을 찢어내며 그 혈기가 블레이드의 몸으로 스며들었지만 이번
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쉬이익― 쉬이익―
찢겨진 적들의 몸에서 강제로 뽑아내듯 자주 짙은 검붉은 혈기
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블레이드의 등 뒤에 있는 검은 그 혈
기를 삼키며 점점 칼날을 늘여가기 시작했다.
“블레이드!”
뒤에서 날아온 한 발의 총알이 양 손을 앞으로 내뻗은 채 블레
이드를 향해 달라붙으려 하던 쥐머리 슈의 머리를 관통했다. 하
지만 블레이드는 그에 대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는커녕 괴성을
내지르며 자신을 중심으로 온 몸의 분노, 혈기를 휘감아 올렸
다.
쿠웅!
땅을 울리는 고동과 함께 레이징 퓨리의 혈기가 블레이드 주위
에 있는 쥐머리 슈와 락샤, 쥐떼들을 공중으로 휘감아 올리며
그 몸을 잡아 찢었다. 그럴수록 블레이드의 등 뒤에 있는 검은
점점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큭, 당신들도 이제 곧 제 종이 될겁니다.”
예상외의 전계에 당황한 듯한 피터가 피리를 불었다. 뇌를 뒤
흔드는 기괴한 음색이 블레이드와 루벨릭의 머리를 뒤흔들었고,
루벨릭은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뭐야! 이 기분 나쁜 음색…!”
하지만 그렇게 주저앉아있을 틈도 없었다.
“크헉?!”
십자로 그어진 혈기가 루벨릭의 몸이 깊게 새겨졌다. 재빨리
들어올린 리볼버에 그의 몸 깊숙히 파고들려 하던 혈기의 십자
가는 멈췄지만, 다음 순간 블레이드의 대검이 루벨릭의 턱을 노
리고 위로 올려쳐지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미쳤어?!”
재빨리 블레이드의 복수를 걷어 차 뒤로 밀어낸 루벨릭은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머릿속을 쥐어짜는 괴상한 음색을 털
어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뒤로 밀려난 블레이드
는 흐느적거리는 모습으로 칼을 쳐들더니 순간 괴성을 내질렀
다.
“크아아아아아아!”
일순간 블레이드의 몸을 감싸고 있는 혈기의 빛이 훨씬 짙어졌
다. 그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듯 입가에서는 피가 섞인 침을 흘
리고 있었다. 루벨릭은 완전히 미쳐버린 듯한 그의 모습에 얼굴
을 찡그리며 총구를 앞으로 겨눴다.
“얌마, 정신 차려! 너 자꾸 이러면 죽일 수 밖에 없잖아! 너도
죽는건 좋지 않….”
날 죽일 수 있겠나?
순간 블레이드가 입버릇같이 말하던 그 네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어째서 항상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루벨릭은 조금 전
블레이드가 꺼냈던 말과 함께 어렵지 않게 어떤 사실 한 가지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죽이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크아아아!”
피를 내뿜으며 괴물로 변한 블레이드가 돌진해왔다. 그건 어디
서나 보던 미쳐버린 버서커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너를 죽일….”
루벨릭은 리볼버를 쳐들었다. 자신의 상처조차 무시하는 버서
커로 돌아간 블레이드라면, 이 거리라면 단 한방에 고통 없이
끝낼 수 있다.
그는 앞을 향해 총을 내뻗었다.
“…수 있을 것 같냐!”
리볼버의 총구에서 뻗어나간 단 한발의 총탄이 블레이드의 머
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티잉―!
피터 더 파이퍼는 저 멀리로 튕겨져나간 자신의 피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뭔가를 눈치 채고 앞을 쳐다
보며 경악한 듯 외쳤다.
“당신…!”
막 눈앞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휘둘러지던 대검이 정면에서 루
벨릭의 옷을 가르며 파고들어 있었다. 만약 1cm라도 더 깊이
대검이 파고들었다면 루벨릭은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내장을 쏟아냈을 것이다.
쉬이이익―
그리고 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의 검붉은 혈기가 그
거대한 검에 흡수된 순간.
핑!
피가 뭉쳐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그 혈도는 완전한 모
습을 갖췄다. 블레이드는 이를 악문 채 자신의 검에 반쯤 베인
루벨릭을 바라보았다.
“너….”
루벨릭은 씨익 웃으며 리볼버의 끄트머리로 블레이드의 머리를
살짝 건드렸다.
“뭐해?”
블레이드는 말없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등 뒤로 돌렸다. 그리
고 자신의 등 뒤에 떠 있는 혈검의 칼자루를 양 손으로 움켜잡
았다. 그리고 부들부들 떠는 얼굴로 자신과 루벨릭을 바라보고
있는 피터를 눈빛으로 죽일 것 같이 노려보았다.
“아, 안 돼!”
“크아아아앗!”
거대한 혈검이 땅을 후려갈기자 그 강렬한 일격에 의해 피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고 있던 피터가 의아해
하며 자신의 발 아래로 고개를 내렸을 때.
쿠우우우우….
혈기와 화기가 뒤섞인 강렬한 빛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것 같
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용암과도 비교할만한 주황빛의 빛이 하늘을 꿰뚫을 듯 뿜어올
랐다. 그 폭발의 속에서 피터의 몸은 점점 갉혀나가듯 깎여져
점차 그 형체를 잃어갔다.
“디, 디레지에니임―!”
다음 순간 피터의 말을 막듯 화기가 폭발했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던 피터의 몸을 이루고 있던 살덩이가 그대로 찢겨지며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키익!”
자신들의 대장이 사라진 탓일까. 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쥐떼 들은 건물의 여기저기로 몸을 피했다. 대검을 내려
친 자세대로 굳어있던 블레이드는 자신이 만들어낸 화기의 구덩
이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야! 괜찮…윽!”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던 루벨릭은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치명상 바로 전에서 멈췄다고는 하나 그건 절대로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잘못 했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지도 모를
상처였다.
잠시 후 블레이드는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루벨릭을 내버려 둔 채 천천히 앞으로 걷기 시작
했다.
그리고 두 세발자국 정도 앞으로 걷던 그는 갑자기 발을 멈추
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있는 루벨릭을 향해 짤
막하게 말했다.
“멍청한 놈.”
“헷.”
그런 블레이드를 향해 루벨릭은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이후
로도 계속 표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급격한 출혈 탓인지 점
점 정신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루벨릭은 정신을 잃었고,
블레이드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는 다시는 블레이드를 볼 수 없었다.
―――――
“죽일 사람이 있어서.”
“응? 죽일 사람?”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키리는 의아한듯 반문했다. 하지만 한
달 전의 과거를 단 한마디로 축약해 내뱉은 루벨릭은 더 이상
말을 하는 대신 빙긋 웃으며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이후 다른 모험가들에 의해 구조된 루벨릭은 몸이 회복되자
마자 블레이드를 찾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있어도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마치 그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았다.
결국 블레이드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해서 귀검사들의 대선배
로 불리는 G.S.D를 찾아간 루벨릭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
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혈기의 검을 사용하는 버서커? 그건 익스트림 오버킬
이군. 헬벤터[Hellbenter]라는 이름을 손에 넣는 버서커들의 힘
이야. 아, 헬벤터 말인가? 흐음, 자네도 알다시피 버서커들의 수
명은 짧지. 자신의 혈기를 남발하는 탓에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을 유지하는 진기마저 빠져나가는 탓이야. 물론 그 이전에
도 제정신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싸우다가 죽어나가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일세. 어쨌든 헬벤터는 다른 존재의 진기가 담긴
혈기를 빼앗아 자신의 몸에 채워넣네. 그렇게 해서 생명을 연장
하는 거지. 하지만 그 진기는 결코 사람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야. 생명 그 자체며 혼이기도 하지. 그런 혼을 흡수해서
융합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나? 점점 미쳐가는 거야. 거의 사술
에 가깝긴 하지만 어쩌겠나?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것을. 그러고
보면 두어 달 쯤 전에 헬벤터로 각성한 버서커가 한명 있었지.
아마 이름이….’
들은 것은 거기까지. 더 이상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루벨릭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저주스러운 힘을 얻은 채
지금까지 살아온 블레이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조금이라도 이
성의 고삐를 늦추면 주위사람을 참살해버리는 광기의 힘이 달가
웠을까?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곁에 사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을 부셔버리고 죽여 버리는 다른 버서커
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보다 강한 존재 뿐. 만의 하나에 상황이라도 자신이 폭주해서
이성의 끈을 놓쳤을 때 자신을 죽여줄 수 있는 존재.
게다가 헬벤터의 힘을 사용해 몬스터들의 진기를 흡수할수록
그의 내면에서 뭔가가 바뀌어간다. 최대한 정상을 유지하려하는
이성조차 흔들려 점점 말 그대로의 버서커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블레이드는 사람을 피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루벨릭은 결국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왜냐면, 피터의 앞에서 자신은 블레이드에게 구원받았으니까.
“그래서 어쩔거야? 나 바쁘다고. 누님.”
루벨릭의 말투에 키리는 피식 웃으며 알았다는 듯 손을 흔들었
다. 그가 대답을 하든 어쩌든 결국 그는 조건을 통과했고, 키리
는 루벨릭에게 데스페라도의 칭호를 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좀 시건방지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넌 이제
부터 데스페라도야. 기술도 괜찮다면 가르쳐줄께.”
“좋지, 어떻게 하는건데?”
“그러니까….”
키리가 설명을 시작하자 루벨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의 한
단어라도 잊을세라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허울뿐인 힘이라도 좋다. 먼지 한 조각 티끌 한
조각과도 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힘이라도 좋았다. 그게 아주
약간이라도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알겠어? 어쨌든 동작이 중요한거야. 알겠어?”
“오케이 오케이. 자알 알았으니까 다음 설명이나 해줘.”
그때 키리의 귀가 잠깐 쫑긋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
의 옆쪽에 있는 달빛주점을 바라보았다. 달빛주점의 입구에서는
모험가들이 하나 둘 씩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대체 뭐야 저놈?”
“으으, 가까이 가기만 해도 기분나빠. 대체 그 붉은 피부는 뭐
야? 아무리 버서커라지만….”
“그러고 보니까 다리에 족쇄까지 달았더라? 웃겨.”
“머리에 뿔도 났던데? 가면까지 썼으면서.”
“뭐? 뿔? 그게 인간이야?”
그들의 말은 루벨릭의 귀에도 스쳐지나갔다. 붉은피부. 가면.
버서커.
“설마….”
“응? 뭐해 젊은 오빠? 아직 설명 다 안 끝…난 건 아니지만.
좀 더 잘 들으라구. 이거 잘못 쓰면 허리 나간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의 버서커는 단 한명밖에 본적이 없었다.
“앗, 젊은 오빠 잠깐!”
루벨릭은 뒤에서 만류하는 키리를 뿌리치며 달빛주점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앗! 뭐야 이거!”
“저 새끼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안으로 들어가
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루벨릭은 그들을 전부 밀어내며 힘겹게
안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약간 어두침침한 주점의 안으로 몸
을 들이민 루벨릭은 그 푸른빛 눈을 돌려 자신에게 익숙했던 버
서커의 모습을 쫒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주점의 한족 구석. 테이블도 의자
도 없는 바닥에 가만히 앉아있는 버서커가 있었다.
걸치고 있는 것은 다 찢어진 가죽옷이라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
고 있었고 상처를 감싸기 위해서인지 피에 물든 흰 붕대가 몸의
여기저기에 감겨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한 쌍의 뿔이 자라나
있어 기괴하게 보였으며 아무것도 신지 않은 그 발에는 강철의
족쇄가 악물려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모험가들은 그
를 피하려는 듯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고 슈시아조차 살짝 눈
을 찡그리고 있을 정도였다.
스윽―
자신이 만든 영역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 버서커는 잡고 있던
대검의 칼자루를 꽉 움켜잡았다.
“오지 마라.”
“글쎄, 내가 언제 그런 거 듣던가?”
목소리가 조금 떨렸을까? 루벨릭은 씨익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쳐드는 블레이드를 내려다 봤다. 불길한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눈으로 웃고 있는 루벨릭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
어나더니 엉덩이를 털었다.
“멍청한 놈.”
“이야, 그거 너무한데. 내가 보기에는 네가 나보다 더 멍청해
보이는데?”
“용건은 뭐냐.”
그 동안 잘 지냈냐는 말은 없었다. 좋다. 그게 오히려 더 블레
이드다웠다.
철컥.
루벨릭이 허리춤에서 리볼버 두 자루를 꺼내들자 주위에 있던
이들은 재빨리 술잔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그들에게서 더
더욱 멀어졌다.
루벨릭은 블레이드의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글쎄, 죽여줄까 해서.”
절대로 죽지 않을테다. 죽이지도 않을테다. 그러기 위해서 강
해졌고, 앞으로도 더더욱 강해질거다.
물론 블레이드가 자신의 말뜻을 이해했을까 하는 걱정은 털끝
만큼도 없었다.
그의 대답에 가만히 있던 블레이드가 말없이 실소했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왼 팔에 짙
은 혈기가 감돌았다.
“죽일거라면 말 없이 덤벼드는 게 좋을텐데.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달깍.
자신의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은 블레이드는 그
가면을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자세를 잡자 비어있는 그 왼손에
검게 물든 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주점의 조명에 드러난 블레이드의 얼굴은 희미한 미소
를 띄고 있었다.
“자신 있으면 해보시지.”
“좋아, 쿨하게 해보자고!”
다음 순간 짧게 공중을 가르는 흰빛의 대검과 검은색의 리볼버
가 마주치며 불꽃이 튀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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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님이 제 캐릭터의 외모를 써주신다고 해서 이리저리 말을
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갈겨본 던전 엔 파이터 단편 팬픽입니다.
원래 아진군은 제 닉인데 제 캐릭터의 머릿말에는 아진을 쓰는
식으로 캐릭터를 만들기에 증식(...)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진곰, 아진군, 아진검, 아진랑. 이런 식이지요.
글에 나온 블레이드는 아진검의 외모나 스킬을 기본 토대로 한
헬벤터입니다. 사실 그대로 아진이라는 이름을 썼다가 아무래도
곤란하겠다 싶어서 바꾼거지요.
루벨릭은 루벤님이 키우시는 데스페라도의 이름이며 외모도 거
기에서 빌려왔습니다. 원래 이름은 루비였는데 역시 후에 바꿨
습니다.
음, 기본적으로 글의 내용은 결국 싸움하기 좋아하는 데페와
버서커가 쿵짝이 잘맞아 친구 먹는다는 내용으로 보시면 되겠습
니다만. 아무래도 게임을 글로 그대로 옮기기는 힘들어서 개인
적으로 덧붙인 오리지널(이라고 하고 변형이라고 읽는다) 설정
이 좀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기본은 게임에 둔 것이기 때문에
별로 걸릴 건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전투씬 면에서는 액션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어쩔련지 모
르겠습니다. 뭐 보시는 분들이 평 해주시겠지요.
익스트림 오버킬이 지나치게 강하게 나온 점에 대해서는...뭐
노멀 피터였나봅니다.(......)
어쨌든 잘 봐주시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즐거운 시간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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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조에 올렸음.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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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던조에도 올렸다니까 왜 하필 블로그껄 오던으로 거는겨;!
어쨌든 그림 그린것도 아닌데 오던에 올려주신 분 감사의 말씀 올리면서 이곳에 찾아주신 분들에게 한마디.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분들이랑 놀려고 쓰는데라 좀 많이 까칠하고 업데이트 느린 블로그입니다.
업데이트라고 해봤자 가끔 잡담 포스팅이나 하는 정도라...
어쨌든 오신김에 잘 놀다 가시길 바랍니다.
ps1 : 던파 팬사이트인 던파조선
http://df.gamechosun.co.kr/ 의 소설게시판에도 올렸습니다.
이후 간간히 단편 쓰는 건 그쪽에도 올릴 생각입니다. 현재 새 팬픽인 Deep Night anc the Seven Spirit도
그쪽에 올리고 있습니다. 블로그에는 다 쓰고나면 통짜리로 완성본 올립니다.
ps2 : 그래서 결국 저 싸움의 끝은.

블레이드가 뿔로 루벨릭에게 박치기를 날리면서 끝났습니다.
라는건 루벤님의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