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팬픽 2탄.
Deep Night anc the Seven Spirit.

딱 보면 알겠지만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의 패러디의 패러디 제목.
 
사실 백설공주랑도 난쟁이랑도 별로 상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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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Night anc the Seven Spirit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의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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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돕는다는 순수한 마음이

소녀를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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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정마알! 제 2척추는 싫어! 길고 지루하고!”

 유적의 사이에 선 채로 드넓게 펼쳐진 하늘에 소리를 지르는 소
녀가 있었다. 머리에 깊게 눌러 쓰고 있는 검은색 마녀고깔모자만
으로도 전신이 다 가려질 것 같은 작은 체구의 그 소녀는, 한참동
안 양팔을 파닥거리며 하늘에 대고 짜증을 표출하다가 땅이 꺼져
라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포옥.

 딱딱한 돌이 아닌 푹신한 감촉에 소녀는 아래를 살짝 내려다 봤
다. 거기에는 아까부터 소녀의 곁을 맴돌던 검고 둥근 머리의 정
령이 소녀를 자신의 몸으로 받치고 있었다.

 “고마워, 스토커.”

 목에 마력으로 된 자물쇠를 매달고 있는 어둠의 정령은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괴고
앉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일까….’

 소환사 딥나이트. 알프라이라를 넘어 노스마이어까지 재패하여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약간 알려진 그 강력한 소환사는 지
금 그 실력에 맞지 않게 베히모스 지역의 제 2척추를 계속 맴돌
고 있었다.
 잠시 몸을 쉬던 딥나이트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던 스토커의 몸체가 점차 투명해지더니 일순간 사라지고 말았
다. 소환사의 마력으로 이 세상에 있을 것을 허락받은 시간이 지
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데는 다 뒤졌으니까 여기가 맞겠지?”

 다음방으로 향하는 문을 빤히 바라보던 딥나이트는 자신의 주위
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허리에 매달려있는
책을 펼쳤다. 그건 그녀가 지금까지 정령과 마계의 스피릿들과의
계약을 성공한 징표가 새겨져 있는 계약의 책이었다.

 “Luis! Wisp! Stalker! Glarine! Dead Murker!"

 그녀의 외침에 책이 빛나며 책장이 펄럭였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리는 보라빛 천을 걸친 아름다운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딥나
이트의 뒤에 섰고 주위의 사물에 녹아있는 원소의 정수가 그녀의
부름에 의지를 가지고 육체를 구성했다.

 “읏….”

 순식간에 소모된 정신력에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딥나이트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길게 늘어트린 보라색 롱웨이
브가 살짝 찰랑거렸다.

 “다들….”

 딥나이트의 중얼거림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소녀는 입술을 살
짝 깨물며 미묘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침묵하는
정령들과 루이즈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자.”

 이 앞에는. 제 2척추의 주인이자 유서깊은 GBL교를 전멸시킨 원
흉. 제 8사도인 긴 발의 로터스가 딥나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찮게 굴기는…!”
 
 아무리 제 8사도라 불리며 수천 명의 GBL신도들을 지배해 베히
모스를 지옥으로 만든 괴물이라 해도 그녀 정도의 힘을 가진 모험
가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딥나이트는 소환사. 다른 모험가들에 비해
극단적으로 몸이 약해 오직 자신이 부리는 소환수들에게 모든 것
을 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위스프! 제발 좀 공격하라구!”

 그러다보니 소환수들이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결국
그녀 자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라고 해도 정령들이 우왕좌왕 해서야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딥나이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로터스는 재빨리 자신의 긴 발을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그 강력한 근육의 수축력을 이용해 마치
총탄처럼 빠르게 앞을 향해 내뻗었다.

 “아얏!”

 작은 소녀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딥나이트는 몸을 일으키
며 로터스의 발이 후려친 자신의 가슴을 매만졌다. 어중간한 모험
가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상처. 그나마 딥나이트의 모험가로
서의 수준이 높기에 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다.

 “이…그냥 크기만 한 문어구이 주제에…!”

 GBL 신도들의 가면과 비슷한 모습의 고대의 유적에 숨어 베히
모스의 어디든지 닿는 엄청나게 긴 다리만을 빼서 모험가들을 괴
롭힌다. 그게 로터스의 수법이었다.
 하지만 정령들은 어째서인지 그 유적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로터
스의 본체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그건 많은 모험가들 사이에
서도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있었다.
 예상외의 고전이었다. 딥나이트는 입술을 깨물며 주위에 있는 정
령들에게 명령했다.

 “이리와!”

 주위를 떠돌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정령들은 소녀의 호령에 재빨
리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딥나이트는 깊게 심호흡을 한 후 허리
에 차고 있던 계약책의 위에 손을 올렸다.

 위이잉―

 딥나이트의 손 위에 기묘한 모습의 고리가 나타나자 주위의 정령
과 루이즈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 고리가 불길한 연보라색
빛을 뿜기 시작하자 얌전히 닫혀져 있던 계약책의 하드커버가 억
지로 뜯어지듯 펼쳐졌다.
 루이즈, 위스프, 스토커, 데드멀커, 글레어린, 아우쿠소의 낙인이
새겨진 페이지가 거칠게 넘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몇 페이지
에 걸쳐 붉게 새겨진 긴 필적이 나왔을 때야 책은 움직임을 멈추
고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큐우우우웃―!
 
 그것은 입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딥나이트는 재빨
리 눈으로 그 필적을 쫓았고 고리에서 뿜어지는 보라색 빛이 스며
든 그 글씨의 색이 점점 변해갔다.

 “윽…!”

 그 길고 긴 문장을 중간쯤 읽었을 무렵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치밀어올랐다. 머릿속조차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새하얗게 비워지는 기분에 딥나이트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집중
하려 했다. 소환하려는 존재가 강력할수록 그 반동이 심해지는 것
은 당연했다.

 『뭘 하려는거냐 애송이…!』

 그 불길한 기운을 느낀 탓일까. 로터스가 정신파에 인간의 말을
담아 내뱉으며 황급히 긴 촉수를 휘둘렀다.

 ‘이, 이런…!’

 낭패였다. 지금 저 촉수에 맞으면 소환은 중지될 것이 뻔했다.

 파지직!

 “위스프?!”

 하지만 순간 몸 주위에 사슬을 두른 흰색의 빛 덩어리가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로터스의 굵다란 촉수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게 보
이는 빛의 정령은 그 일격에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마력을
상실한 채 흩어지고 말았다.

 『방해하지 마라 이 하등한 것들!』

 로터스가 분노한 듯 다시 촉수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 다음 순
간 딥나이트의 등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파이어 볼!』

 그녀 또한 원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기에 그 목소리에는 기묘
한 노이즈가 섞여있었다. 로터스는 앞으로 뻗으려 하던 자신의 촉
수가 폭발해버리자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몸부림쳤다. 그러
자 그 몸부림에 영향을 받은 듯 베히모스가 긴 괴음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루…이즈?”

 갑작스러운 중력에 몸이 눌리는 느낌을 받으며 딥나이트는고개를
돌렸다. 그 보라색의 미녀는 대답 없이 다시 앞을 향해 손을 내밀
었다. 그러자 공중의 수분이 일순간에 얼어붙으며 뾰족한 바늘의
모습을 취했고, 그것은 로터스가 몸을 숨기고 있는 유적을 꿰뚫었
다.

 『크아아아아아! 이 계집년이!』

 고통보다 분노가 앞선 것일까. 자신의 두터운 촉수들을 비틀어
꼰 로터스는 딥나이트의 앞을 막아 선 루이즈를 향해 그 촉수더미
를 휘둘렀다.

 콰드드드득―!

 수십 장의 석판이 뒤집어지며 루이즈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순
식간에 당해버리는 루이즈의 모습에 딥나이트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시 계약책의 나머지 페이지를 재빨리 눈으로 쫒았다.

 『멈춰라 인간!』

 그걸 그냥 두고 볼 로터스가 아니었다. 어느 사이엔가 천장 위로
뻗어두었던 촉수가 딥나이트의 머리 위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윽, 아악!”

 웬만한 건장한 남자의 몸통만큼이나 굵은 로터스의 촉수는 딥나
이트의 작은 몸을 그대로 으깨버리려는 듯 더더욱 소녀의 몸을 졸
랐다. 책은 펼쳐진 채로 딥나이트의 아래로 떨어져버렸고, 로터스
는 고통스러워하는 소녀의 모습에 만족한 듯 킬킬거리는 정신파를
내뱉었다.

 “늦었….”

 딥나이트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로터스를 향한 채 이를 악물었
다.

 “어! 이 바보 문어야!”

 딥나이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이 이상하게 일렁였다. 마
치 신기루가 일어난 것처럼. 촉수의 안쪽에서 억지로 오른손을 빼
낸 딥나이트는 손을 그 일렁이는 공간을 향했다. 그 손의 위에는
아까 책을 펼칠 때부터 있던 보라색의 고리가 떠 있었다.

 『서, 설마 이 기운은…!』

 로터스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종이 한장의 두께만큼이나 얇아진 이쪽의 차원과 이계의 경계에
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딥나이트는 그 일렁이는 공간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이 시건을 구하기 위해 계약했던 일곱 번째 존재. 결
과적으로 자신에게 쓸데없는 힘을 강요해버린 존재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CASILLAS!”
 
 보랏빛의 고리가 일순간 강한 빛을 내뿜었다. 

 스악―!

 뭔가 날카로운 것이 저 너머의 이계에서 뻗어 나와 얇아진 차원
을 갈랐다. 십자형으로 잘려진 경계의 안쪽은 온통 붉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어 그 안쪽이 어떤 세계인지, 과연 생명체가 살 수 있
는 곳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쿠웅.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갈려진 틈 사이로 새나왔다. 발소리뿐만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주위를 얼어붙게 만드는 뜨거운 투기가 흘러
나와 주위를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공간에서, 거대한 어떤 존재가 이쪽의 차원을 향
해 한 발을 내딛었다.

 쿠우우웅!

 그 발울림에, 지진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 진동에 낡은 유적이
크게 흔들리며 천장에서는 돌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유적 속
에 숨어있는 로터스마져 그 지진에 허둥댔고 루이즈와 정령들 또
한 겨우 몸을 가누며 그 갈라진 공간에서 걸어 나오는 존재를 주
시했다.
 거대한 유적의 천장조차 낮아 보일 만큼이나 큰 키와 몸집. 마치
버서커와 같은 붉은 눈동자에 등 뒤로 넘긴 긴 금발. 척 보더라도
그는 분명 인간은 아니었다. 이마를 뚫고 나온 한 쌍의 뿔과 피부
가 변화하여 갑옷처럼 변한 어깨의 모습을 보더라도 그러했다.

 큐우웅.

 잘려진 차원의 경계가 닫히고 나자, 로터스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존재의 이름을 외쳤다.
 
 『카, 카시야스…!』

 제 4사도. 정복자. 마계와 아라드 양쪽 모두에서 가장 큰 공포의
대상. 사람들은 그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긴발의 로터스.』
 『크아아아아! 어떻게 일개 인간이 카시야스와 계약을 할 수 있
다는 말이냐! 이런 말도 안 돼는 일이!』

 당황해하던 로터스는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촉수에 잡힌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딥나이트를 노려보았다.

 『서, 설마. 그 보라색 고리가…?!』

 로터스는 딥나이트의 손을 살폈다. 여전히 그 보라색의 고리는
그녀의 손 위에 떠서 불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분명했다. 실재
로 본적이 없기에 한눈에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세상의 많은 지
식을 모으는 GBL교단. 그들이 쌓아둔 수많은 지식을 흡수한 로터
스의 머리 안에는 소녀의 팔위에 떠 있는 고리에 관한 지식 또한
있었다.
 어떤한 강력한 존재든 그의 의지를 꺾고 지배해버리는 세컨드펙
트의 가르침을 받드는 자들이 사용하는 힘.

 『복종의 고리!』

 아무도 대답하지는 않았다. 카시야스는 당황해하는 로터스를 놔
둔 채 딥나이트를 바라보며 허리에 차고 있는 수 자루의 검 중 한
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휘익!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그 칼놀림은 광검을 다루
는 웨폰마스터라 할지라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땅에 떨
어진 딥나이트는 잘린 후에도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을 감고 있는
로터스의 촉수를 억지로 때어냈다.
 
 『크아앗! 너, 너 내 촉수를…!』
 『실망이다. 예전에 비해서 전혀 강해지지 않은게냐? 로터스.』

 카시야스는 한참 후에야 몸에 스며드는 고통을 느끼고 몸부림치
는 로터스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남의 정신을 조작해서 이용해먹으며 정작 자신은 안전한 곳에
서 발만 놀리고 있다니. 너 같은 놈은 이 칼조차 아깝지.』

 카시야스는 마치 산책을 나온 것 같이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자신
의 허리에 찬 칼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슬쩍 몸을 낮추며 금방이
라도 앞으로 돌진할것 같은 모습을 취했다.
 그가 모습은 검집에서 검을 마찰시켜 가속화해 뽑아 휘두르는 웨
펀마스터들의 필살기중 하나인 발도. 그것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 그 발도자세를 잡고 있는 것은 정복자로 불리는 제
4 사도 카시야스다. 그가 사용하는 검술이 그런 흔한 귀검사들의
검술과 같을 리가 없었다.
 
 『간다.』
 
 짤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 육중한 몸이 일순간 사라지나 싶더니
다음 순간 그는 로터스의 코앞에 서 있었다.

 『이, 이놈!』

 당황한 로터스는 발을 휘둘러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카시야스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푸확! 서걱! 콰직!

 막 그를 공격하려 하던 그 촉수들은 보이지 않는 칼날들에 의해
수십, 수백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몇 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검풍이 유적의 두꺼운 돌을 가
르며 그 안에 있는 로터스의 몸을 헤집었다. 저항할 수도 없는 실
체 없는 검격의 폭풍에 로터스는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며 녹색
의 체액을 뱉어내야 했다.

 『필살검[必殺劍]. 천귀살[千鬼殺].』

 카시야스가 중얼거리며 뽑아든 자신의 검을 칼집에 넣었다. 로터
스는 분노와 온 몸이 잡아 찢기는 고통에 몸을 떨며 커다란 녹색
의 눈을 돌렸다. 그의 눈은 저 멀리에 가만히 서 있는 딥나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내, 내가 쓰러지다니…두고 봐라 이놈들! 나는 이렇게 그냥 당
하지 않는다…!』

 커다란 진동과 함께 로터스는 상처 입은 몸을 자신의 몸에서 분
리하더니 재빨리 유적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모습을 감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쓸모없는 녀석이군.』
 
 그 사이 로터스의 사체로 다가온 딥나이트는 누런 체액이 지저분
하게 퍼져있는 그 살조각들을 헤집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도 카시
야스는 딥나이트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가만히 뒷모
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찾았다.”

 소녀가 살조각 사이에서 집어든 것은 오색으로 빛나는 결정이었
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로터스의 체액에 녹아버렸는지 그 결정의
양은 딥나이트의 손으로도 겨우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오색소금인가?』
 “알아?”
 『여기저기 싸우느라 돌아다니다보면 자연히 견문도 넓어지는 법
이란다.』

 남겨진 로터스의 몸과 그가 사라진 커다란 구덩이를 내려다보던
카시야스는 재미없다는 듯 콧방귀를 내뀌며 칼자루에 손을 올렸
다. 그리고 흥미거리를 잃어버린 옆집 아저씨 같은 말투로 딥나이
트의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이 정도는 시시하다. 다음에는 좀 더 강한 상대를 준비하려무
나. 문엠프레스.』
 “응.”

 그 대답을 들은 키시야스의 몸은 점차 희미해지나 싶더니 곧 완
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만약 그가 진짜 카시야스였다면 다시 차원
을 경계를 가르고 마계로 돌아갔겠지만, 방금 그것은 카시야스의
분신이었다.
 본체와 정보와 기억, 감정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본체나 다
름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힘에서는 현격히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
했다. 딥나이트 정도의 소환사가 복종의 고리를 사용한다고 해도
불러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카시야스의 분신 정도였다.

 “이제 로저 아저씨에게 가보면 되겠네.”

 오색소금을 미리 준비한 주머니에 넣은 딥나이트가 손바닥을 살
짝 움켜쥐자 공중에 떠 있던 복종의 고리가 작은 빛을 내며 일순
간 사라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딥나이트는 어느 새 사라진 정령들의 사이에서 홀로 서 있는 루
이즈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이제 가 봐. 몬스터들도 없으니까 혼자서 돌아갈 수 있어.”

 소녀의 말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마계의 마법사의 모습이 점
차 흐려지나 싶더니 이내 그녀는 자신의 차원인 마계로 모습을 감
췄다.

 “휴우.”

 홀로 남은 딥나이트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을 내
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아주 희미한 보랏빛의 띠가 마치 문신처럼
팔을 휘감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때부터. 복종의 고리는 딥나이트와
영원히 함께 할 운명과 세컨드펙트의 소환사들이 자기 자신들을
부르는 호칭을 소녀에게도 부여했다.
 문엠프레스 딥나이트. 그것이 지금 다른 이에게 불리는 새로운
그녀의 이름이었다.
 


 “흐음, 이거 양이 너무 적군요?”
 “…에?”

 수많은 모험가들이 오고가는 웨스트코스트의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황금색의 기계말과 마차. 그건 이 세상에 새로운 골드러시를
일으키려 하는 대상인 로저 래빈의 유랑형 가계였다.
 현재는 유랑을 잠시 멈추고 웨스트 코스트에서 꽤나 오랜시간동
안 장사를 하고 있는 로저 래빈은 자신의 중절모를 슬쩍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건 뼛속까지 장사꾼이 어떻게 웃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교과서적인 웃음이었다.

 “이 정도의 양으로는 성분 분석도 힘들어서 말이죠. 일단 성분
분석도 해보고 뭔가를 만드는데 쓸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면…흐
음, 그렇지. 이 정도의 다섯 배는 있어야 하지 않을 까요?”
 “아, 아저씨 너무 뻔뻔하다….”

 딥나이트는 너무나도 뻔뻔한 로저의 표정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
다. 하지만 로저는 그 악담에도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회색수염
을 만지작거렸다.

 “하하하, 어쨌든 꽤나 희귀해보이는 물질이긴 합니다만. 이 정도
양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전 일단 짐을….”
 “아아! 알았어요! 알았다구! 더 구해 올 테니까 짐 싸지 말고 얌
전히 있어요!”

 뻔뻔함은 장사꾼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미덕. 그 미덕을 몸소 실
천하고 있는 로저는 볼을 통통하게 불리고 빼액 소리를 치는 딥나
이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막 저쪽에서 붉은 장발
을 흩날리며 자신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험가를 향해 고개
를 돌렸다.

 “골드 러시에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헉, 헉. 아유 힘들어라. 아저씨 짐 싸서 어디 간다더니 아직 안
떠났네? 아직 일 하는 거 맞죠?”
 “하하, 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이야, 잘됐네. 잘못하면 놓칠까 걱정했는데. 어디보자 키리 누님
이 필요하다고 한게…일단 청색큐브 10개랑 흑색큐브 10개. 최상
급연석 100개랑 강철조각 100개 바꿔줘요. 바쁘니까 빨리이. 빨
리이이이.”

 딥나이트는 왜지 껄렁껄렁해보이는 푸른 눈의 레인저를 힐끔거리
며 슬쩍 발을 돌렸다. 그리고 둘이 말하는 것을 뒤로 하고 황금색
의 기계 말의 곁으로 물러나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다시 베히모스 지역의 제 2척추를 돌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때 그렇게 서서 마가타가 있는 항구쪽으로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잠시 쉴지 고민하던 딥나이트의 귀에 누군가의 힘 빠
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야아아~.”

 깜짝 놀라며 허리를 곧추세운 딥나이트는 마계인 특유의 귀를 쫑
긋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딥나이트는
그 목소리가 저 황금말의 뒤쪽에 있는 마차와 벽의 사이에 있는
천막에서 들려오는 것을 눈치챘다. 곧 종종걸음으로 그 천막에 다
가간 딥나이트는 그 안쪽으로 목을 쏙 집어넣었다.

 “다프네 언니? 뭐해요?”
 “아…이 목소리…딥나이트양?”
 
 거기에는 갖가지 물건을 만드는 재료에 깔려 쓰러진 채 땅에 떨
어진 안경을 더듬거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묘하게 가슴이 강조되는 녹색의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남자
같이 푸른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는 그 금색 단발의 아가씨는, 손
끝에 걸리는 안경을 허겁지겁 얼굴에 걸치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
을 돌아보았다.

 “아~역시 딥나이트양이네요.”
 “그러니까 대체 뭐 하는 거에요. 언니.”

 재빨리 다프네의 곁으로 다가간 딥나이트는 그녀의 팔을 잡고 힘
껏 잡아당겼다. 딥나이트의 도움에 재료더미에서 겨우 몸을 일으
킨 다프네는 어색하게 웃는 몸의 먼지를 털어냈다.

 “음, 재료 좀 꺼내다가…실수했어요.”
 “보통은 아무리 그런다고 깔리거나 그러진 않는다구요. 매일 그
렇게 앉아서 아이템만 만들고 있으니 그렇지. 언니 분명히 운동부
족이야.”

 그때 저 앞쪽에서 누군가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비록 햇빛을
등지고 있었지만 그 머리 실루엣에 보이는 특유의 중절모 때문에
그가 로저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로저가 다프네의 작업장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딥나이트는 재빨리 마차의 천 뒤에 몸을 숨겼다. 다행
히 로저는 그런 딥나이트를 보지 못했는지 다프네와 이리저리 흩
어진 재료더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대체 뭘 한거냐 다프네?”
 “아, 사장님. 그게 재료 좀 꺼내려다가….”
 “좀 조심하지 않고는. 어쨌든, 그거 치우는 건 나중에 하고. 이것
들 여분이 있나?”

 건성으로 걱정하는지 야단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한 로저는 다프
네에게 뭔가 적혀진 종이를 내밀었다. 다시 한번 안경을 고쳐 쓴
그 종이에 적혀진 목록을 읽기 시작했다.

 “에…청색큐브 10개, 흑색큐브 10개, 최상급연석 100개, 강철조
각 100개…지금 있는 물품 중에서 청색큐브1개랑 흑색큐브3개가 
모자라는데요. 최상급 연석이랑 강철조각도 다 떨어져가고….”
 “그래? 그러면 손님이 급히 필요하다고 하시니 만들던 건 놔두고
이것 먼저 만들어라. 연석과 철조각은 나중에 공수해야겠군…얼마
나 걸리지?”
 “30분쯤이면 충분하죠.”
 “음, 그럼 빨리 부탁한다. 다프네.”

 로저 래빈이 사라지고 나자 딥나이트는 어둠 사이에서 머리를 빼
꼼 내밀고 귀를 쫑긋거렸다. 다프네는 그런 강아지같은 딥나이트
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에에~ 사장님이 저한테는 화내도 딥나이트양한테는 화 안내실
테니 괜찮아요.”
 “흥, 언니 혼나는 거 보는 건 나도 싫으니까. 어쨌든 언니 바쁠
것 같으니까 이 정도는 내가 정리 해 줄께.”
 “아아, 그러실래요? 고마워요. 음, 그럼….”

 허리위에 양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내미는 딥나이트의 모
습에 디프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던졌다. 그리고 그
쌓여있는 재료더미 속에서 큐브조각들을 추슬러내 자신의 작업대
의 옆에 있는 기계속에 넣기 시작했다.
 그런 다프네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계약책을 펼친 딥나이트의 손
이 뭔가를 주저하듯 잠깐 멈칫거렸다.

 “읍.”

 하지만 곧 소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조용히 책의 세 번째 챕터.
온통 짙푸른 어둠으로 검게 책해져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아주 옛날에 그 특이한 서명을 자신의 계약책에 남긴 장본인의 이
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스토커.”

 그의 부름에 천막 안에 퍼져있는 여기저기의 어둠이 둥그렇게 뭉
쳐진 머리를 쳐들었다. 작게 빛나는 두개의 눈과 어슴푸레한 깃털
과도 같은 깃털을 머리 뒤쪽으로 늘어트린 그 정령은 자신들을 소
환해낸 딥나이트를 향해 모여들었다.
 딥나이트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목에 마력으로 된 자물쇠를 차고
있는 스토커들을 향해 손가락에 마력을 실어 휘둘렀다. 그 손짓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잡동사니들, 같은 모양끼리, 모아.]

 스토커들은 말없이 입을 벌려 땅에 떨어진 잡동사니들을 물고 한
쪽 구석에 쌓기 시작했다. 딥나이트는 자신의 명령이 잘 먹혔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봤다.
 
 키이잉….

 커다란 원통형의 유리 안쪽에서 백여개의 큐브조각이 하나로 합
쳐지고 있었다. 그 거대한 유리관의 아래에는 딥나이트로서는 그
원리조차 알 수 없는 기계가 이상한 진동음을 내고 있었고, 다프
네는 그 기계의 조종장치의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
는 중이었다.

 “저기이, 다프네 언니이?”

 다프네는 말이 없었다.
 그냥 겉보기에는 무표정하고 왠지 맹해보이는 이미지의 다프네였
지만, 사실 그녀는 기계에 관해서는 천재였다. 그녀는 자신이나
로저가 디자인한 기계를  만들어내어 그 기계로 모험가들이 가져
오는 재료들을 전혀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요긴한 재료들로 만
들어내곤 했다. 만약 다프네가 없다면 로저가 이 정도의 대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했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다프네가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녀의 집중력은
옆에서 붐카겔의 폭탄이 떨어져도 모를 정도였다. 그걸 알고 있는
딥나이트는 그 큐브가 천천히 합쳐지는 것을 보며 다프네가 허리
를 펴기를 기다렸다.
 
 “휴우. 어깨가 뻐근하네.”

 큐브가 둥글게 하나로 뭉쳐진 후 지직거리며 각이 갖춰지기 시작
하자. 다프네가 얼굴의 땀을 훔치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종류별로 쌓여있는 재료들과 눈을 빛내고 있는 스토
커들을 보고 살짝 놀란 듯 팔을 움찔거렸다.

 “아, 놀래라. 정리 다 끝났나요? 고마워요”
 “아냐, 별거 아닌데.”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딥나이트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두드리던
다프네는 문득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뭔가 말을
하려 했다.

 “음, 그럼 저기…괜찮으시면….”
 “윽, 어깨 주물러 달라고?”

 딥나이트는 멋쩍게 웃는 다프네를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
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작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아~ 언니느은~ 운동부족이라니까아~”
 “아야야, 아, 아파요오.”
 “에잇, 엄살 부리지마!”

 고사리 같은 손이 다프네의 등을 찰싹 후려치자 다프네는 움찔거
리며 허리를 폈다. 그런 다프네의 반응에 딥나이트는 작게 킥킥거
리며 다시 그녀의 어깨와 등을 주물렀다.

 “아, 아아아. 시원해라.”

 어느 새 어깨 주무르기에 심취한 딥나이트의 손길에 다프네는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큐브의 완성을 기다리는 다프네의 어
깨를 한참동안이나 주무르던 딥나이트는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다프네 언니?”
 “뭔가요오?”

 축 늘어진 그 목소리가 재미있는지 딥나이트는 작게 킥킥거렸다.
하지만 곧 정색하며 더듬더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저기, 언니는 이 마을이 좋다고 했지?”
 “예에, 사람들도 활기차고. 전 이 마을이 참 좋아요. 어려운 부탁
이었을 텐데 들어줘서 참 고마워요 딥나이트양. 정말 그게 마지막
장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프네의 말에 로저의 얼굴을 생각해낸 딥나이트는 질린다는 듯
혀를 작게 빼냈다.
 사실 딥나이트가 오색소금을 구하려 하는 것은 다프네의 부탁 때
문이었다. 원래 로저는 며칠 전에 이 마을을 떠나려 했다. 그게
정말인지 다프네에게 묻자 그녀는 사실이라고 했고, 로저가 뭔가
큰 이윤이 남을만한 귀한 합성재료의 존재를 안다면 이 마을에 남
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곧바로 주위 사람에게 그런 물질의 존재를 묻던 딥나이트는 오필
리아에게서 덴드로이드의 정글에서 나오는 수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당장 던전에 들어가 그 수액을 모아 다프네에게 갔다. 희
망을 가진 다프네는 로저에게 그 수액의 존재를 알려달라고 했지
만, 문제는 거기부터 끝없이 퍼져나기가 시작했다.
 로저가 딥나이트가 자신이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눈치 채
고 좀 더 귀한 물질들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딥나이트는 며칠 동안이나 베히모스의 여기저기를 돌며 스
토커에게서는 무형의 검은물질, 도르니어에게서는 공중부양장치,
텐타클들에게서는 강력접착액을 구해 로저에게 갔다.
 그러자 로저는 더더욱 귀한 물질이 있다면 남겠다고 했고, 이번
이 마지막이라는 확답과 함께 샤란이 말한 오색소금을 구해오기로
한 것이었다.
 
 “근데, 그냥 언니가 로저 아저씨 안 따라가면 되는거 아니야?”
 
 사실 그게 가장 간단했다. 로저가 떠난다고 해도 다프네가 싫다
면 그냥 남아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다프네는 계속 말이
없었고 딥나이트는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사실 그렇잖아. 언니 정도 실력이면 어디든 써줄 텐데. 모험가
들 사이에서 언니 인기 좀 있다구. 그…있잖아. 아는 오빠가 언니
가, 가슴도 크다고….”
 “예?”
 “에이잇! 어쨌든! 굳이 로저 아저씨하고 같이 다닐 필요도 없잖
아? 보면 맨날 아저씨는 언니 부려먹기만 하면서 고맙다는 소리도
잘 안하던데. 혹시 언니 로저 아저씨….”
 “사랑하냐고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던 딥나이트가 입술을 꾹 닫았다. 지나다는
말투로 대답한 다프네는 잠시 침묵하다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다
프네는 약간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뇨. 로저님은 제 취향이 아니랍니다. 물론 사장님을 좋아하
긴 하지만 남자로서 보자면 저는 좀 더 젊은 분이 좋아요. 로저님
과 저는 그저 사장님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에요.”
 “그, 그럼 왜 그러는 건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프네의 얼굴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
다. 잠시 생각하듯 천막의 천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집게손가락으
고 가만히 누르고 있던 다프네는 저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스토
커들을 가리켰다.
 
 “저 스토커들은 딥나이트양이 소환한거죠?”
 “응? 아, 응. 맞아.”
 “딥나이트양은 저 스토커들에게 일을 시켰잖아요? 그리고 그 일
은 끝났고. 그런데 왜 아직 여기에 남아있는 걸까요?”

 공학자인 다프네는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 때문에 이번에는
딥나이트가 소환과 주종관계의 계약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까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그런 대답을 바란게 아니었는지 양 손바닥을 가
볍게 마주쳐 소리를 내 딥나이트의 주의를 끌었다.

 “쓰임의 관계에요.”
 “쓰임의 관계?”
 
 막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비유법을 생각하던 딥나이트가 반문하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 겉으로 보긴 좀 맹하잖아요?”
 “응.”

 거침없는 대답이었지만 다프네는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실재로도 맹해요.”
 “…응. 알고 있어.”
 “그래서 어릴 때도 고생 많이했어요. 공부도 머리에 안 들어오
고, 그렇다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어머니 따라서 가정일 배우
다가 접시도 하루에 네 장씩 깨먹었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접시
아홉 장을 깨먹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내쫒겼죠.”

 진지한 이야기였지만 웃을 수가 없다. 다프네는 웃음을 참느라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딥나이트를 향해 계속 말했다.

 “그때 마침 저 멀리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말이 눈에 보였어요.
신기하잖아요? 그래서 그쪽으로 가서 구경하다 보니까 그 기계말
의 다리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잘 몰랐지만 구동축
이 좀 엇나가 있었죠. 그때 그 말의 주인인 로저님이 제가 그런
말을 하자 저보고 재능이 있다고 하면서 일을 배워보지 않겠냐고
하셨죠. 그 말에 전 곧바로 로저님의 뒤를 따라서 여행을 시작했
고요.”
 “어, 언니 가출한거야?”

 깜작 놀란 딥나이트의 표정에 다프네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내저
었다.

 “에~ 설마요. 한 3년 후쯤에 집 찾아가서 알려드렸어요. 지금도
잘 지내시구요. 음, 그러고 보니 그때 어머니가 죽은 줄 알았다면
서 막 우시던데. 왜 그러셨을까….”

 맹한게 맞구나. 딥나이트는 정말로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
는 다프네의 모습에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다프네는 멋쩍은 듯 코를 긁었다.

 “아까 쓰임의 관계라고 했잖아요?”
 “응. 그랬어.”
 “그러니까. 전 그때서야 제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알게 된 거
에요. 이 세상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지를 알게 된 거죠. 흔한 말로 다시 태어난거에요. 두 번째 생일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생일….”

 딥나이트의 중얼거림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로저님이 좋아요. 어떤 생각으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두 번째 부모님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당분간은
로저님을 떠날 수가 없어요. 로저님이 좋기도 하고 이 일도 좋
고…아직 로저님이 절 어디까지 가르쳐 주실 건지도 궁금하고. 아
마 저 아이들도 그런 게 아닐까요?”

 딥나이트는 다프네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옹기
종기 모여있는 스토커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이쪽을 바라보
고 있었다.

 “저 아이들도 딥나이트양을 좋아하는 거에요. 음~ 이상한 소리
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 애들도 자신들이 딥나이트양을 좋아하고
자신들을 어디까지 끌어 올려 줄 건지 궁금해 하고 있지 않을까
요? 그래서 자신의 힘이 다 할 때까지는 딥나이트양을 떠나지 않
고 계속 따르는 거죠. 응? 딥나이트양?”
 “아. 미, 미안.”
 
 어느 새 딥나이트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괜찮아요?”
 “응, 아무것도 아냐. 괜찮아. 정말로.  나 왜 이러지?”

 옷소매로 얼굴을 문질러 눈물을 재빨리 닦아낸 딥나이트는 다시
활짝 웃으며 다프네에게서 뒷걸음 쳤다.

 “그럼 나 다시 베히모스 갔다올께. 오색소금을 마저 구해 와야
언니도 여기 남을 수 있으니까.”
 “아, 예. 부탁할께요.”
 “응, 그럼 내일쯤 봐~.” 
 
 딥나이트는 엉거주춤 손을 흔드는 다프네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천막을 가로질러 모습을 감췄다. 홀로 남겨진 다프네는 손을 내리
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딥나이트양…왜 우는거지?”

 

 베히모스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생물이다. 때문에 베히모스에 가
려는 여행자들은 일단 하늘을 날 수 있는 배인 마가타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로 향해야 했다.

 “딥나이트님.”
 
 막 웨스턴 코스트의 항구 입구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선 딥나이트
의 귀에 성인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딥나이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몸에 딱 달라붙는 청
색의 드레스에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푸른 장미로 머리를
장식한 육감적인 몸매의 마법사였다.

 “오시는걸 보지 못해서 걱정했습니다. 어떠셨나요. 원하시는 건
구하셨나요?”

 그녀는 마계인인 딥나이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미끈한 피부는 흑요정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유의 연보랏빛 띄고 있었다.
 속삭이는 듯한 차분하고 친절한 그 말투에, 딥나이트는 어린아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응, 샤란 언니. 힘들어서 혼났지 뭐에요.”
 
 그녀가 바로 웨스트 코스트에 오랜 세월동안 거주하여 지금은 모
든 마법사들의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는 마법사 길드의 장. 샤란이
었다.
 샤란은 살짝 상체를 숙여 딥나이트가 내밀어보는 가죽주머니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 가죽주머니의 안에 담겨있는 자잘한 결정
의 덩어리들은 바다 특유의 짠내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서 스며 나오는 빛은 결코 자연적인 빛이 아니었다.
 손끝을 주머니 안에 넣어 그 결정 몇 톨을 들어올려 문질거린 샤
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특유의 빛깔…오색소금이 맞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로저님에게 갔다 오시는 것 아니신가요?”
 
 여성 특유의 상냥함과 차분한 연륜이 섞인 편안한 목소리. 자신
의 머리를 쓰다듬는 샤란의 손길에 귀를 쫑긋거리던 딥나이트는
로저의 이름이 나오자 웃는 것을 멈추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지 뭐야.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맨날 다프
네 언니 부려먹는 것도 나쁜데. 아, 맞다. 샤란 언니.”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살짝 뒤로 물러난 딥나이트는 기대에
찬 눈으로 샤란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그건 어떻게 됐어요?”

 샤란은 갑작스러운 소녀의 말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응, 그렇네…그게 그렇게 쉽게 찾아 질리는 없겠지?”

 씁쓸한 표정으로 오색소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딥
나이트는 주머니의 입구를 가죽끈으로 꽉 죄여 매며 고개를 들었
다. 딥나이트의 얼굴은 다시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나 다시 베히모스 갔다올께요. 빨리 가서 더 구해와야 다
프네 언니가 걱정 안하죠.”
 “예, 그럼 나중에 뵈어요.”
 
 딥나이트는 항구를 향해 달리며 뒤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빠이~ 나중에 봐 언니~”

 소녀를 향해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있던 샤란은 딥나이트의 모습
이 인파 사이에 섞여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가만히 손을 내렸
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아름다운 눈매를 찡그렸다.

 “후우….”

 샤란은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벌써 일년이나 전의 일이었다. 엘븐가드의 라이너스에게서 소개
장을 받아 자신을 찾아온 작은 마법사는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달라붙고 부비거리는 마치 강아지같은 소녀였다.
 마계에서 건너온 마법사들에게 마법을 가르치고 있는 건 핸돈마
이어에서도 마법길드의 길드장인 그녀뿐이었다. 그녀 외에도 누군
가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출신
성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불특정다수에게 무보수로 마법을 가르
치는 일을 맡으려 하지는 않았으니까.
 기계적으로 마법을 가르치고 배워가는 지루한 리듬 속에서 딥나
이트는 샤란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
으면서도 낙천적이고 타인을 너무나도 쉽게 믿어 남의 일을 자신
의 일 처럼 생각하는 천성을 가진 마계에서 온 소녀.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어? 좋아! 난 소환사가 될래요!’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소녀는 샤란의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소환사의 길을 택했다.
 그 후로 일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딥나이트는 그란플로리스의
미궁을 뚫고 하늘성에 오르며 베히모스를 넘어 알프레이라까지 향
했다. 게다가 이제는 흑요정들이 지키고 있는 언더풋 입구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지고 주위의 분위기가 변해가도 딥나이트의
천진난만함과 밝음 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소녀의 천성이다. 샤란은 딥나이트가 어둡게 변할 거라고는 상상
하지 못했다.
 바로 한 달 전의 그날 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 날 이후부터….’

 망치왕 보로딘의 원혼에 홀려 죽어가던 시건을 회복시키기는 방
법을 찾기 위해 샤란은 딥나이트를 호출했다. 언더풋의 입구에서
쏜살같이 돌아온 딥나이트는 백방으로 시건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
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보로딘의 원혼을 쫒아보내버려야 한
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로딘보다 강한 존재를 소환해내는
것. 결국 그 소환방법까지는 알아냈지만 딥나이트는는 아직 그를
지배할 수 있는 힘도 없었고 너무나도 위험성이 컸다. 그 사이에
도 계속 죽어가던 시건의 모습에 결국 딥나이트는 마지막으로 금
단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문엠프레스들의 도구. 복종의 고리[Ring of Rule].
 시건은 구해냈다. 하지만 그 순간 복종의 고리는 딥나이트의 몸
에 완전히 정착해버렸다. 지배의 고리의 힘은 과거부터 계속 그녀
를 지켜오던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딥나이트가 계약해서 소환하던 정령들과 마계의 주민들. 그들과
소녀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고, 더 이상 그들
은 딥나이트의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들은 그저 복종의 고리의 힘에 자신의 의지를 꺾이고
움직이고 있는 인형에 가까웠다.

 ‘응, 괜찮아. 일단 시건은 구해냈으니까. 이제 이걸 없애는 방법
을 찾아보자.’

 모든 존재들과 친구가 된다는 행위를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했고
영원히 그럴 거라 생각했던 딥나이트에게 그 일이 얼마나 충격이
었을지는 샤란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딥나이트는 천진
난만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 금단의 비법을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는데 시간은 계속 흘러갔
다. 그렇게 일주일이, 이주일이. 한달이 지나도 딥나이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샤란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스피릿들과 교
감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
지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언제든 밝게 빛나던 태양에 검은 기운이 스며들고 있는 듯한 불
쾌한 기분이 샤란을 우울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럼…고대의 고서관에서 온 자료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샤란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마법사 길드의 안으로 발을
옮겼다. 한시라도 그 태양에 스며있는 검은 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서.


 “크아아!”

 엄청난 갈색 근육을 꿈틀거리는 거대한 괴수가 공중으로 몸을 날
렸다. 과거에는 원래 인간이었지만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어버렸
다고 하는 알렉스. 베히모스의 제 2척주의 마지막 방의 바로 앞에
서, 제대로 스피릿을 소환하지 못한 딥나이트는 의외로 고전하고
있었다.

 “아얏!”

 딥나이트가 지팡이를 휘둘러봤지만 알렉스는 그 지팡이질을 깔끔
하게 무시하며 그대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강렬한 충격파에 바닥
에 쓰러져버리고 만 딥나이트에게 흰 옷을 입은 GBL주교가 단검
을 휘둘러댔다.
 
 “아, 아파앗!”

그건 말 그대로 작은 상처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젖는다
고 했던가. 게다가 기나긴 제 2척추의 마지막 방이라는 것은 그만
큼 딥나이트가 지쳐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스으읏….

 딥나이트는 주교가 단검을 휘두른 후 공중에 비정상적인 마력이
모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력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 그
장소. 딥나이트의 몸 위로 너무나도 노골적인 노란 원이 잠깐 반
짝였다.
 
 “위상변화!”

 순간 딥나이트의 몸 주위에 분홍빛 연기가 터져 나오나 싶더니
다음 순간 딥나이트는 주교와 알렉스들에게서 떨어진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황한 듯한 알렉스가 원래 딥나이트가 있던 쪽
을 보며 크르렁거렸지만 거기에는 작은 허수아비 인형만이 남아있
을 뿐이었다.

 “아우쿠소옷!”

 재빠르게 계약책을 펼치고 네 번째 챕터, 식물의 덩쿨과 붉은 꽃
이 그려진 페이지를 펼친 딥나이트가 외쳤다. 그러자 딥나이트의
앞의 벽돌이 움찔거리나 싶더니만 마계의 살인화 이우쿠소가 순식
간에 커져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아앗!

 아우쿠소가 꽃잎을 펼치가 오랫동안 피어있어 기묘한 맛의 꿀이
나는 아우쿠소의 꽃에만 모여 사는 독벌레들이 알렉스를 향해 뻗
어갔다.

 “크아악! 크악!”

 독벌레는 알렉스가 적이라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그 몸에 달라붙
어 짙은 독기를 주입했다. 바닥을 뒹굴던 알렉스는 곧 그 독기에
목숨이 끊어졌는지 몸을 축 늘어트리고 말았다.

 “네놈!”

 분노한 GBL교주가 아우쿠소를 향해 다가오려 했지만 아우쿠소
가 더 빨랐다. 교주의 발아래에서 작은 나무뿌리가 튀어나오며 주
교의 다리를 꿰뚫어버렸다.

 “에잇!”

 앞으로 뛰어나간 딥나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주교를 향
해 재빨리 손을 휘둘렀다. 붉고 가느다랗게 정련된 마력의 채찍이
주교의 어깨를 후려쳤고 마지막으로 남아 그 방을 지키고 있던 주
교는 그대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하아. 하아. 히, 힘들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턱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은 딥나이트는 마
지막으로 남은 방의 입구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로터스는 저 안
에 숨어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소환되어 있는 스피릿은 없는데 정신력이 아슬아슬했다.
지금 남아있는 마력은 루이즈를 소환하고 나면 아마도 다른 정령
들은 제대로 소환하지 못하고 기절해버릴지도 모를 정도.

 “어쩔 수 없네.”

 잠시 고민하던 딥나이트는 계약책의 일곱번째 챕터를 펼치고 그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복종의 고리가 연보랏빛으로 빛나기 시
작했다. 곧이어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딥나이트는 잠
깐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입술을 깨물고 고통을 참아낸 소녀는
조용히 자신의 일곱 번째 스피릿이자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스피
릿 중 가장 강력한 그의 이름을 불렀다.

 “CASILLAS.”

 진동과 함께 약해진 차원의 경계가 갈라진다. 십자로 갈라진 틈
새에서 나타난 거구의 사도가 이 땅에 발을 딛자 큰 진동이 딥나
이트의 몸을 뒤흔들었다.

 『음?』

 그렇게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시야스는 이상하다는 듯 붉은
눈을 찌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나.

 『뭐냐, 싸울만한 존재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하다못해 네가 항
상 불러내는 마계의 마법사조차 없군. 대체 무슨 일로 날 부른 것
이냐?』

 싸움을 좋아하는 만큼 다혈질이고 성질 또한 그렇게 차분하지 않
은 카시야스였다. 만약 복종의 고리로 인하여 의지가 어느 정도
꺾여있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딥나이트는 등 뒤가 서
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앞에 로터스가 있어. 그래서 미리 부른거야.”
 『로터스? 그 문어놈 말이냐? 흐음, 대충 싸워도 이길 수 있을만
한 상대와 싸우는 건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그래도 좀 도와줘요. 카시야스가 아니면 힘든 일이야.”

 카시야스는 힘없이 중얼거리는 딥나이트의 모습이 이상한듯 고개
를 갸우뚱 거렸다.

『그러고 보면 네 수준은 이미 로터스와 겨눈다고 해도 도움이 되
지 않을 정도까지 올라가 있지 않더냐. 저번의 그 오색소금을 구
하기 위해서 로터스를 잡으려 하는 것이냐?』
 “응.”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딥나이트의 모습에 카시야스는 더더욱
흥미가 간다는 듯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하지만 오색소금은 너와 같은 자가 이용할만한 것이 아닌
데. 굳이 말하자면 뭔가를 만들려 하는 과학이나 마법에 매달리는
이들이나 탐낼 것 아니냐.』

 카시야스는 싸우는 것 이외의 풍류를 전혀 모르는 존재는 아니
다. 오히려 다른 사도들에 비해 낙천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약간
인간적인 이미지마저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딥나이트는 의외로
흥미 있어 보이는 표정을 한 카시야스의 모습에 차분히 다프네에
대한 일을 말했다. 
 설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프네가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기에 자신이 로저에게 희귀한 재료를 보여주어 이곳에
남게 하려고 한다는 것만 설명하면 됐으니까.

 『흠, 그런 일이 있었나. 뭐, 좋다. 싸움이 있다면 난 그걸로 족
하니까.』

 턱을 쓰다듬으며 그 이야기를 듣던 카시야스는, 로저가 딥나이트
에게 더 많은 오색소금을 가져오라고 한 대목이 막 지나자 태연하
게 로터스가 있는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그렇다면 어서 가도록 하자. 문엠프레스. 비록 그 상대
가 별 볼일 없는 문어라지만 지루한 것은 딱 질색이니까.』
 “에? 정말로 이해한거야?”

 복종의 고리에 씌여 있기에 딥나이트의 주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카시야스는 이상하다는 듯 반문하는 소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
개를 숙이고 변명하듯 로저와 다프네에 관해 중얼거리던 그 연보
라색 머리의 소녀는, 어쩐지 필사적인 갈색 눈으로 소녀 본인의
세네 배는 족히 될 것 같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카시야스는 다프네가 왜 그런 건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갑작스러운 철학적인 듯한 대답에 딥나이트는 멍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카시야스는 그런 딥나이트의 표정에 씨익 웃으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이 나를 소환할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진 천재라고 해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군.』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린 문 엠프레스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결국 자신을 위해
살아간단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남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 것
도 결국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인 것이지. 자신이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야. 예를 들어, 너는 정말 네가 복종의
고리를 쓰기에 날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 아니였어?”

 당황해하는 딥나이트를 보며 카시야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와하하하하핫!』

 한바탕 크게 웃던 카시야스는 자신의 검을 뽑았다. 그리고 움찔
거리는 딥나이트의 반응에도 상관하지 않고 그 검을 자신의 발 아
래에 꽂아 넣고 크게 외쳤다.

 『나는 싸우는 게 좋다! 그래서 수많은 존재들과 싸우며 실력을
겨눴지. 너희들에게 제 1사도라 불리는 카인과도 싸웠지만 난 그
녀석에게는 지고 말았다. 두렵냐고? 당연히 두렵지! 하지만 그건
그 녀석에게 져버려서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다. 또 다시 그 녀
석과 붙었을 때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패배해버리는 게 두려운 것
이야! 그래서 난 너와 같은 문엠프레스들과 계약을 한 것이다. 그
녀석과 다시 한번 붙었을 때 완벽하게 이기기 위해, 한 톨의 티끌
도 없이 즐기기 위한 힘을 수련하기 위해서!』

 그런 카시야스의 반응에 딥나이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 하지만 그건 너무…자신만을 위해서라니 그건….”
 『그래, 작은 문엠프레스야. 나의 이 생각은 이기적일지도 모르
지.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야.
어떠냐, 네가 그 다프네라는 인간 여자를 돕는 것도 결국 네가 후
회하지 않기 위해서일텐데. 그럼 넌 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카시야스는 딥나이트가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알아챈 듯 재빨리
말허리를 가로챘다. 소녀는 그것은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
었고 카시야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렇겠지. 너와 인연이 깊지 않은 내가 봐도 넌 착해. 다른 이
들의 일에 이 정도로 뛰어들 정도라면 분명 악인은 아니지. 너와
인연이 그다지 깊지 않은 내가 알 정도라면 네가 소환하는 스피릿
들도 잘 알거다.』
 “그, 그 애들도?”

 반문하는 딥나이트의 머릿속에 자신이 계약한 스피릿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말을 하다가 너무 돌아와 버렸구나. 어쨌거나, 요컨데 네
가 쓰는 그 지배의 고리는 나를 불러내는데 아무런 영향도 발휘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
 “그, 그럼! 카시야스는 만약 내가 복종의 고리를 없앤다고 해도
내 소환에 응해 줄 거란 말야?”
 
 마치 반항하는 듯한 딥나이트의 외침에 카시야스는 빙긋이 웃으
며 몸을 돌렸다.

 『물론, 네가 부른다면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불러내는 다
른 스피릿들과 마찬가지로 그 부름에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추천할 수는 없겠구나. 나는 싸움에 열중하다 보면 주위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거든. 게다가 성질이 급하다. 만약 지금처럼 네가
날 소환했는데 주위에 아무것 없어서 내가 화를 낸다면, 혹은 싸
우다가 너의 스피릿들과 너에게 피해를 준다면. 너는 나를 어떻게
막을 작정이지?』

 딥나이트는 침묵했다. 카시야스는 그런 딥나이트에게서 고개를
돌려 제 2척추의 마지막 방으로 향하는 문을 향했다.

 『어서 가자꾸나. 내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
지 않았고.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 움직일 수 없으니.』

 그 말에 소녀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로터스가 기다리고 있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카시야
스에게 자신의 소환에 응한 대가, 싸움을 제공하기 위해.


 
 『또 다시 같은 수법으로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이런 잔재주나 피우다니!』

 카시야스가 한 걸음 발을 내딛으며 검을 휘두르자 그를 향해 슬
금슬금 다가가던 GBL신도들의 허리가 일순간에 분리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로터스의 앞에는 수많은 몬스터들과 정신지배당해버린 GBL신도
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미 카시야스는 자신의 필살검인 천귀
살까지 사용했지만 로터스의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고기방패들을
완전히 치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이된 후에 이런 잔머리만 늘은 게로구나 긴발의 로터스!』
 『크크큭, 어떤가? 만약 진짜 네가 왔다면 이런 몬스터들은 네
검압에 순식간에 다 정리되어버렸겠지만, 어차피 네놈은 분신! 저
소환사가 너를 이 세상에 묶어둘 수 있는 시간까지 막는 건 일도
아니다!』

 카시야스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그것은
또 다른 자신. 모든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인 것이다. 분신
이 모독 받은 것은 결국 카시야스 본인을 모독 당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네 이놈! 다른 존재들을 이용하는 짓 밖에 하지 못하는 주제에
…!』

 카시야스가 길게 포효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런 카시야스의 움직
임에 로터스는 재빨리 위로 뻗어 오른 자신의 긴 발을 휘둘러 천
장을 부셔버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몇 십 마리나 되는 텐타클과
디바우러들이 떨어져 내려 카시야스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런 잡졸들로 내 앞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카시야스의 발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그 거대한 사도의 몸이
앞으로 내달리며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형의 검기들이 미친듯
춤추며 지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카시야스의 몸은 로터스의 앞까지 닿지 못했다.

 『크으으!』 

 싸움꾼이라 불리는 제 4사도는 분한 듯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자
신의 앞을 또다시 가로막는 디바우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비록
한 칼에 몇씩이나 쓰러지는 허수아비에 가까운 적들이라고 하더라
도 이렇게나 숫자가 많으면 심지어는 그 시체에 길이 막혀버릴 정
도가 되어버린다.

 “카시야스!”

 뒤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에도 카시야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딥나이트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계속 앞의 적
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카시야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괘, 괜찮은 거야?!”
 
 그 외침에 카시야스는 날카로운 자신의 이빨을 꽉 깨물었다. 만
약 자신이 소환된 존재가 아니라면 전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이런 허수아비들 따위, 수천이 몰려와도 자신에게 땀조차 흘리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원래 카시야스의 분신이고, 문엠프레스의 부
름에 응답하여 이 땅에 강림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게다
가 전 방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너무 한 탓에 이제 자신이 싸울 수
있는 시간은 몇 초도 남아있지 않았다.

 『최종비기[最終秘技]…!』

 카시야스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서 손을 때고 양 팔을 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작은 문엠프레스야! 이 잡졸들은 모두 처리해주마!』
 “잠깐만! 무슨 소리…읏?”

 딥나이트가 그를 소환해낸 장본인이었다. 자신과 카시야스의 사
이의 링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감각이 확실하게 느껴져 왔다.
이대로라면 불과 5초, 아니 3초 조차….

 『필살검[必殺劍]! 지옥도[地獄刀]!』

 카시야스의 몸 주위에서 반투명한 수십 자루의 검이 모습을 드러
냈다. 그건 그의 몸 주위를 떠돌고 있던, 그가 지금까지 쓰러트려
온 이들의 혼과 투기의 결정체.

 끼이이…!

 카시야스의 부름에 이 세계에 몸을 얻게 된 수십 자루의 검들은
그가 사라지며 내뿜는 투기에 반응했다. 그리고 점점 투명해지는
카시야스를 중심으로 주위의 적을 향해 소나기같이 내리꽂히기 시
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의 지옥도[地獄圖].
 어떠한 존재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피를 피하지는 못한다. 카시야
스의 공격에도 겨우겨우 살아남아 있었던 몬스터들은, 머리 위에
서부터 쏟아지는 검의 비에 온몸이 난도질당하며 순식간에 해체되
어버렸다.

 “카, 카시야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속 썩히는 놈이군. 어쨌든 이제 너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감히 나에게 그런 굴욕을 맛보
게 했겠다!』

 멍하니 사라진 카시야스의 이름을 되새기던 딥나이트가 로터스의
음흉한 중얼거림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미 바닥난 마력과 정신력
때문에 머릿속은 멍했고 체력 또한 꽤나 줄어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뻗어나온 로터스의 다리들이 딥나이트의 몸과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으, 으윽!”

 피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때 늦은 후회였다. 지옥도에서도 살
아남은 디바우러와 텐타클이 딥나이트를 향해 스물스물 기어 오고
있었다. 비록 카시야스가 거의 다 처리한 탓인지 몇 마리도 체 되
지 않았지만….

 까득.

 딥나이트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도 없어.’

지금 딥나이트의 주위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눈앞의 적을 멸
해줄 친구들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주위를 지켜줬던 마계의 마
법사도, 붉은 잎을 가진 꽃도, 빛과 어둠의 정령도.
 
 “아…아악…!”

 로터스의 다리가 딥나이트의 몸을 부셔버릴 듯 조여들었다. 힘은
약하지만 지능적이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제 8사도 로터스. 베히
모스를 지배하고 있는 그 긴 발의 주인은 그 커다란 푸른빛 눈으
로 눈앞의 소녀를 노려보았다.

『끝이…윽?!』

 순간 딥나이트의 몸을 조이던 로터스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대
체 무슨 일이 일어 난걸까.

 “에잇!”

 그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딥나이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
려는 듯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력의 채찍을 휘둘러 자
신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텐타클을 쳐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가?’

 거기에는 한 마리의 스토커가 로터스의 다리에 뒤엉켜 그 다리를
힘겹게 물어뜯고 있었다.

 “스, 스토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누군가를 소환해낼 여력따위
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저 스토커는 어디에서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빠직!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딥나이트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뒤쪽에서 몰래 딥나이트를 덮치려 했던 텐타클이 위스프
가 내뿜은 전격에 얻어맞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위스프…까지?”

 그들의 몸 주위로는 보라색의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건 복
종의 고리의 효과였다. 그들은 분명 자신의 소환수였다.

 “어, 어째서? 나는 너희들을 부르지 않았는데….”

 하지만 자신은 그들을 부른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들은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저 아이들도 딥나이트양을 좋아하는 거에요.’
 ‘물론, 네가 부른다면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불러내는 다른
스피릿들과 마찬가지로 그 부름에 답할 것이다.’

 그때 문득 다프네와 카시야스가 했던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당시에는 그게 정말인
지 가짜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믿을 수 없는 말들이.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위스프와 스토커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
는 것 같았다.
 이곳에 나타난 것은. 자기 자신들의 의지라고.

 “설마…너희들?”

 딥나이트의 커다란 눈동자가 그렁그렁 떨렸다.

 “내가 위험한 걸…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딥나이트는 고집스럽게 턱을 치켜
세우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곧 그 작은 소녀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으흑…!”

 딥나이트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계약책을 펼쳐들었다.

 투둑….

 작은 물방울이 책의 페이지위에 떨어졌다. 여전히 손 위의 복종
의 고리는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위스프와 스토커의 의지 또
한 자신에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전혀 없었다. 잘못 된 것도 없었다.
 예전에 그들과 처음으로 계약을 했을 때와 같은 약속으로, 자신
들의 의지로 나타나 준 것이다.

 “루이즈! 글레어린! 데드 멀커! 아우쿠소! 위스프! 스토커!”

 순식간에 수십 장이나 되는 책의 챕터가 펄럭이며 빛났다. 복종
의 고리가 빛을 발하며 마계의 존재들과 원소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 딥나이트의 주위에 섰다.

 “윽….”

 순식간에 정신력이 빨려나간 탓일까. 비틀거리던 딥나이트는 자
신의 등을 누군가 받쳐주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보라색의 마법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 본 채 자신에게 가
슴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비틀거리며 바로 선 딥나이트가 책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로터스
는 순식간에 늘어난 스피릿들의 모습에 당황한 듯 주위의 텐타클
들에게 외쳤다.

 『뭘 하는거냐! 빨리 처리하지 않고! 어차피 저 계집애만 잡으면
저 소환수들은 사라질거다!』

 그 말에 힘을 얻었는지 텐타클들과 디바우러는 슬금 거리며 딥나
이트와 그녀의 스피릿들을 포위했다.
 하지만 딥나이트는 그들에게는 안중도 없다는 듯 아우쿠소의 꽃
잎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시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희들 잊지 않은 거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너희
들과 계약했는지.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손 위
에서 빛나는 복종의 고리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이럴 것이다.
 딥나이트는 자신의 몸만큼이나 가냘픈 글레어린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나, 자신감이 없었나봐. 난 너희들을 좋아했고 너희들도 날 좋
아해줬는데…생각해보면 너무 간단하잖아? 그게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었어.”

 이 목소리가 스피릿들에게 닿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딥
나이트는 손을 뻗어 딱딱히 굳어있는 데드멀커의 손 위에 가만히
자신의 손을 겹쳤다.
 
 “걱정 하지마.”

 너무나도 소중하고 소중한 존재였기에 이런 상황이 되어버리자
불안하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그리
고 자신도.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만큼 상대방을 좋아해주고 아낀
다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안 울께.”

 딥나이트는 자신의 곁에 선 위스프와 스토커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복종의 고리?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서로에게 오해하고 슬퍼할
가벼운 사이였나? 그 증거로 이 작은 정령들은 그들 자신들의 의
지로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던가.
 딥나이트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장난스
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만약에 말야, 으응, 내가 멋대로 너희들을 이용하고 있는 거라
면, 복종의 고리가 없어진 후에 원망하는 소리 다~들어줄께. 원하
는 것도 다 해줄께.”

 가볍게 들어올린 손에 작은 캡슐이 뭉쳤다. 그 안에는 마력으로
짜여진 기묘한 빛과 냄새를 발하는 마력의 페인트가 들어있었다.
 딥나이트는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로터
스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휘둘러 캡슐을 내던지며 외쳤다.

 “하지만 난 믿어!”

 로터스의 머리위에 쏟아진 기묘한 빛과 냄새에 스피릿들이 일제
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들의 의지인지, 복종의 고리에 의한 움직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딥나이트는 오랜만에 한 점의 티끌도 없는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맨 처음, 소환사가 되어. 자신이 그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
을 믿었던 그 날과 같은 얼굴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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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엠프레스로 각성 후 스토리에 눈물 흘리시는 소환사 유저분들에
게 바칩니다.

 

어디보자…그럼 잡담을 좀 해보자면.
일단 던파 설정 자체가 뭐시기한게 많아서 역시 개인 설정이 많이
들어갔는데. 일단 거기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일단 다프네와 로저에 대한 ‘성격’이나 ‘과거’에 대한 건 다 자작
입니다. 공식 설정상으로는 나이랑 뭐하고 있는지만 나와있어서
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아이템 교환 해주는 것도 자작설정.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큐
브 조각을 통짜 큐브로 전환시키는 거란 말입니까.
그리고 로터스가 마지막에 도망갔다고 한 것도 자작설정입니다.
뭐 말은 없습니다만 애초에 ‘윽 내가 여기서 쓰러지다니~’이러면
서 쓰러진 로터스가 다음 판에 또 나오려면 도망갔었다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니면 죽었다가 계속 되살아나던가 해야되는데
그런 설정의 보스라면 해들리스 나이트가 있겠죠.
지배의 고리의 착용샷(?)도 자작설정입니다. 원래 판지나 목걸이
를 생각해봤었습니다만. 인벤토리 스샷을 보니까 뭔가 막 불타는
느낌이라 걍 손 위의 고리 정도로 했습니다.
딥나이트는 픽션캐릭입니다. 굳이 외모의 모티브가 된 캐릭이라면
제 저렙 소환사긴 합니다만 나머지는 픽션입니다.
카시야스의 성격이나 말투, 가치관 등등도 픽션입니다. 말 나왔으
니까 말하는 건데 샤란의 현재 상황이나 과거 상황도 픽션입니다.
최대한 게임 이미지 살려보려고 했지만서도…이건 뭐 설정을 한줄
로 다 써놔서.
정말 이러고 보면 던파가 설정 상 얼마나 구멍이 많은 게임인지
알게 되는군요.ㅇㅅㅇ) =3

그럼 즐거운 시간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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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탈옥기 써야 되는데 뭔 엄한 던파 팬픽 소재만 자꾸 생각나
나…난감난감.
역시 던조에 올렸음.

 

by 아진군 | 2008/04/24 04:09 | 소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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