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팬픽 3탄.
어쩌다보니 루벤님이랑 공동 프로젝트가 되버렸는데...

애초에 스토리 자체를 그쪽이 낸거라 본편엔 많이 간섭할 생각은 없고 외전격인 단편을 쓸 생각.

역시 던조에도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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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Chronicle - episode 3 凡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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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처는 참 좋아요.”
 
 소란스러운 주점 안에서 그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푸른 머리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남자. 그나마 드러나
있는 나머지 얼굴의 반은 붉게 물들어 있고 그 상체는 의미 없
이 양 옆으로 흔들린다. 게다가 대답하는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
고 그 입은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혹자가 그를 본다면 그의 상태를 단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
으리라.

 “재능이 출중하지 않더라도. 엄격한 수련 같은걸 하지 않더라
도. 편하게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취해 있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지독하게.
 그가 앉아있는 달빛주점 구석에 있는 테이블의 위에는 완전히
비어있는 다크 데킬라 병이 두 개. 반쯤 비어있는 병이 한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알프라이라의 특산물이 되어버린 다크 데킬라는 일반인이라면
다섯 잔 정도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치사량이 되어버릴 독한 술
이다. 그걸 혼자서 저 정도로 마셨다면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버
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으…아으…우에…….”

 그의 곁에 앉아있던 동행은 그 런처의 말에 알 수 없는 중얼거
림으로 답했다. 약간 앳되보이는 붉은 머리칼의 그 청년의 앞에
는 다크 데킬라가 반쯤 담겨있는 술잔이 놓여져 있었다.
 다크 데킬라 반잔에 사경을 해매고 있는 자신의 동행이자 동료
인 루비의 모습에, 그는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
듬었다.

 “결국 말에요. 누가 쓰던 중화기란 건 만들어진 스펙 그대로의
힘을 내는 거잖아요? 루비나 저기 저 레인저같은….”
 “쇼타임!”

 로하울러의 말을 끊듯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리볼버에서 뿜어
지는 총알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미쳐 주점 밖으로 피하지 못하
거나 그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이들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
를 숙여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려 했다.

 “어이쿠.”

 옆에 내려놓았던 중화기 케이스를 세워 자신에게 날아드는 총
탄을 막아낸 그 런처는 케이스 밖으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그 레인저가 뿜어낸 수많은 총탄을 넓은 대검으로 막아낸 버서
커가 막 그의 턱을 향해 검을 올려치고 있었다.
 
 “차앗!”

 그 레인저가 재빨리 턱을 뒤로 젖히자 종이 한 장 차이로 대검
의 칼날이 스쳐 올라가 공중을 갈랐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얼
굴의 중앙에 길다란 검상이 생겼을 것이다.

 “휘우.”

 그런 그들의 모습에 런처는 가볍게 휘파람을 풀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정말 대단한데요. 저걸로 끝나나 했는데. 안나가고 구경하고
있기를 잘했군요.”
 “아…아우우…에? 뭐어…뭐가아?”

 멍한 얼굴의 루비가 고개를 드나 싶더니 부들부들 떨며 결국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그 런처는 자신의 비어있는 술잔
에 다크 데킬라를 부으며 루비의 등을 가만히 문질렀다.

 “참 부러워요. 이런 몸을 타고 난다는 게.”

 자신보다 조금 어린 데스페라도의 등을 쓰다듬는 그의 손끝에
서는 묘한 상념이 스며 있었다.
 모험가가 가지는 힘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수련의 시간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직접적으로 몸을 사용해서 적을 공격하
는 귀검사들이나 격투가들. 마법과 신성력이라는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마법사나 프리스트들에게 있어서 재능과 수련은 그 무
엇보다 강함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물론 거너라고 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날아오는
총탄마저 막아내고 피해낼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하는 레인저
나 순식간에 전장 한 가운데에서 로봇을 조립해내는 재능이 있
는 메카닉. 특수한 탄환에 마력을 짜 넣어 사용하는 스핏파이어
등. 그들에게 있어서도 재능과 그 재능을 꽃피우는 수련은 무엇
보다 중요한 미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직 단 한 개의 직업.
 런처에게는 특별한 재능을 요구하지 않는다.

 “뭐, 런처가 된 걸 후회하진 않지만 말이죠.”

 그는 약간 쓰게 웃으며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현재 아라드에 있는 런처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중화기의 기원
은 천계의 기술과 군인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은 모든 인간에게 특별한 재능을 바라지
않는다. 재능이 모자란 자라고 해도. 재능이 뛰어난 자라고 해
도 평균에 끼워 맞춰지게 ‘만들어내는’ 것이 군대의 역할.
 물론 조금 재능이 있는 이들은, 힘이 있는 이들은 무거운 중화
기를 좀더 정확하게 쏘거나 그 반동을 쉽게 견뎌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적에게 좀 더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도 있다. 또
한 등급이 높은 이들은 조금 더 좋은 중화기를 다룰 수 있는 권
한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사용하는 중화기가 규격에 벗어
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중화기는 모두
공장에서 규격대로 만들어진다. 같은 등급의 장비는 그 등급에
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모두 똑같은 성능을 낸다. 예외 같은
건 없었다.
 심지어, 런처들이 걸치는 갑옷은 검사들이 걸치는 중갑옷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건 적의 한 가운데에 뛰어들어 싸우며 적의
공격을 받아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적들이 앞에 버티고 있는 아군들을 넘어 자신들에게 당도해도
다른 아군이 도와줄 때까지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막아
낼 수야 있다면 상대방의 공격을 피해내는 것 보다는 막아내는
것이 훨씬 난이도가 떨어지니까.
 일정한 훈련과 일정한 체력만 단련한다면 일정한 힘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 런처는 그런 이들이었다.

 “아아, 그래도 정말 부럽단 말이죠 이 몸. 가져가 버릴….”
 “로하울러!”

 막 다시 뭔가를 중얼거리려 하던 그의 입이 멈췄다. 그는 루비
의 등을 만지작거리던 자신의 손을 쳐내듯 날아든 검은 고양이
의 모습에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른 앙칼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 있는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아아, 엘시리스 양. 좋은 오후―.”
 “저녁이야!”
 “자네 괜찮나? 과음은 몸에 좋지 않은데.”

 녹색 눈동자의, 묘하게 선한 눈빛을 한 근육질의 거한이 테이
블 위를 훑어보며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로하울러가 대
답도 하기 전에 그 똘망똘망한 푸른 눈동자의 소녀. 엘시리스가
말허리를 가로채며 외쳤다.

 “괜찮을리가 없잖아! 으, 술냄새. 루비는 왜 저래? 술 얼마나
먹인 거야?”
 “음? 글쎄요. 어디보자.”
 
 그는 반쯤 차 있는 다크 데킬라의 병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타는 듯한 화끈함이 느껴지는 무색의 액체의 나머지를 자신의
목 안에 털어 넣은 후 입가를 훔치며 빙긋 웃었다.
 
 “아, 크흠, 독하네요. 음, 제가 마신게 두병하고 거의 전부니까.
저게 다군요.”

 엘시리스는 루비의 앞에 놓여있는 반쯤 비워져 있는 잔을 보고
안도한 듯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하지만 곧 이내 그 푸른색
눈을 치켜뜨고 로하울러를 향해 투덜거리듯 말했다.
 
 “흥, 술도 잘 못하는 얘 데리고 말야.”
 “아아, 엘시리스양. 언제 봐도 아름다운 머리카락이군요.”
 “엑, 뭐, 뭐하는 짓이야!”

 엘시리스는 순간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
고 있는 로하울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알콜에 의해 무뎌져 있
는 감각 속에서도 그 고통은 유별나게 강했기에 로하울러는 몸
을 움츠리고 자신의 다리를 붙잡았다.

 “이거~ 칭찬 한건데. 너무한데요.”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당황한 듯한 엘시리스의 얼굴을 올려다
봤다.

 “그래, 갑자기 그렇게 사람의 다리를 걷어차는 건 별로 좋지
않지. 엘시리스.”
 “애쉬마일 오빠! 너무 뜬금없잖아. 이 술주정뱅이가!”

 로하울러는 자신이 아닌 애쉬마일에게 변명하듯 말하는 엘시리
스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왜요? 평소 때도 이러잖습니까?”
 “물론 평소 때도 갑자기 머리 쓰다듬으면서 그런 소린 하기야
하지만…그렇다고 내가 안 때리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이건 손
의 느낌이 틀리다구! 뭐랄까…뭐라고 해야 되나. 좀 더 끈적이
는 느낌이랄까…으으…! 뭐라고 해야 되지?”

 로하울러는 양 손을 꼼지락거리며 뭐라고 설명하려고 하는 엘
시리스의 모습에 자신의 손가락을 핥았다.

 “음, 술이라도 묻어있었나 보군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모습에 엘시리스의 얼굴이 좀 더 빨갛게 변했다.
 이 남자는 항상 이렇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그 행
동에 휘말려 있다보면 도무지 이쪽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가 없게 돼버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엘시리스는 그와 대화하
다 보면 언제나 결국 폭력에 호소하곤 했다.
 작게 혀를 내밀어 손끝을 낼름거리던 로하울러는 붉게 변한 엘
시리스의 얼굴을 보고 빙긋 웃어 보이며 말을 던졌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싸움 구경 하러 오셨나요?”
 “싸움구경?”

 평소 때라면 좀 더 장난을 쳤을 텐데. 엘시리스는 약간 진지하
게 말을 걸어오는 로하울러의 태도에 약간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웅!

 거기에는 막 상대방의 정수리를 향해 혈검을 내리치고 있는 버
서커가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어딜!”

 하지만 그 레인저는 재빨리 뒤로 몸을 빼더니 다리를 회전시키
며 상대방의 복부를 향해 그 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버
서커는 그 다리를 대검의 옆면으로 강하게 쳐내버렸다. 그리고
자신과 좀 떨어진 곳에서 바로 선 채 다리를 문지르는 그 레인
저를 향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에피타이져만 맛봤으면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건 이르지.
안 그래?”

 두 사람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게 아쉽다는 듯 다시 서로
에게 부딪혔다.

 “이런 곳에서 난투극이라니. 슈시아씨에게 폐를 끼칠텐데.”

 넋을 놓고 그 둘의 싸움을 보고 있던 엘시리스는 애쉬마일의
탄식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아직 열이 가라앉지 않은 자신의
볼을 문지르며 로하울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사람들 도망쳐 나온 게 저것 때문이었나 보네? 어쨌든
아냐. 마가타가 내려왔다구. 베히모스 간다고 했잖아?

 원래 일행은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서 잠시 웨스트코스트에 와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다들 다시 모였을 때  로하울러가 갑자
기 베히모스에 갈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일단 웨스트코스트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 베히모스행 마가타가 오지 않았다는 소리에 시간
을 때울 수단을 찾던 로하울러는 루비를 허리에 끼고 핸돈마이
어의 달빛주점으로 향했었다. 아무리 인파이터라고는 하지만 성
직자인 애쉬마일은 되도록 금주하고 있었고, 엘시리스는 아직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아아, 그랬지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덕분에 한참동안 둘은 시장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
지만. 엘시리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화기 케이스를 등에 짊어
지는 로하울러를 향해 툴툴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하러 베히모스에 가는거야? 우리 이미 거기에
갈 레벨은 아니잖아?”
 “음? 아아, 그게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하울러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약간 진지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은 오필리아양이 말이죠.”
 “음? 오필리아양이? 무슨 일이 있는건가? 혹시 로터스가 또 다
시 무슨 흉계를?”

 자신의 진지한 표정에 역시 정색을 하는 애쉬마일을 바라보던
로하울러는 갑자기 싱긋 웃었다.

 “데이트 해주는 대신에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음,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는 일이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로하울러는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입을 벌
린 엘시리스와 한숨을 내쉬는 애쉬마일의 모습에 키득거리듯 웃
었다. 그리고 역시나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야, 어쨌든 그래서 그런데 좀 도와주면 안될….”
 “가버려어어엇! 이 바보야아아아앗!”

 엘시리스의 구두굽이 다시 한번 로하울러의 정강이를 차려 했
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틀거리면서도 용하게 그 발길질을 피해
낸 로하울러는 엘시리스가 하트모양의 장식이 달린 로드를 꼬나
잡는 것을 보며 재빨리 주점의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애쉬마일씨. 술값은 선불로 내놨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 그리고 엘시리스양.”
 “뭐얏!”

 로하울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애쉬마일에게
서 눈을 때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루비군 좀 챙겨주세요.”
 “에? 잠깐 지금 나보고 저 바보 뒷바라지까지 하란거야? 로하
울러! 야! 이 바보얏!”

 어쩐지 당황한 듯한 엘시리스가 마구 손짓을 하며 외쳤지만 이
미 로하울러는 문 밖으로 나서며 뒤쪽을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
고 있었다.

 “그럼 좀 이따…엿차, 봐요 엘시양.”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오는 작은 눈사람 모양의 마력덩이
를 슬쩍 피해낸 로하울러는 재빨리 문 밖으로 사라졌다. 엘시리
스는 분한 표정으로 로드를 잡고 있는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
다.

 “으에에에…아…머리아파…왜 이렇게 시끄러…응? 엘시? 애쉬
형아? 로형아는요오?”

 그때 엘시리스의 뒤쪽에서 아직 잠에서 덜 깬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부스스한 붉은
머리를 긁적이며 흐릿한 푸른 눈동자를 깜빡이는 바보스러운 얼
굴이 보였다.

 “몰랏! 멍청아!”

 빠악!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던 루비는 갈 곳 잃은 분노를
담아 휘둘러진 엘시리스의 로드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비명도 지
르지 못한 채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잠시 그렇게 선 채 씩씩거리던 엘시리스는 늘어진 루비의 뒷덜
미를 잡더니 그를 질질 끌며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
무나도 눈에 띄는 그 둘의 모습에 애쉬마일은 재빨리 그 뒤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엘시리스. 힘들 것 같으면 내가….”
 “제, 제가 할거에요!”
 
 그 고집스러운 외침에 애쉬마일은 잠시 발을 멈추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이런…벌써 지쳐 보이는데.”

 엘시리스는 벌써부터 숨이 턱에 찬듯 헥헥거리면서도 힘겹게
루비를 끌고 가고 있었다. 결국 애쉬마일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뭐, 하는 데까지는 놔두도록 할까.”

 아마도 이 문 밖 정도가 한계겠지만. 그는 다시 둘의 뒤를 따
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늘을 자연스럽게 날 수 있는 생물은 새 뿐이다.
 인간이나 흑요정들은 마가타의 힘을 빌어 하늘을 날기도 하지
만 그건 엄연히 말해 자신들의 힘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마도
학자들도 빗자루의 힘을 빌어 하늘을 잠시 활공하긴 하지만 그
것 역시 마법의 힘일 뿐.
 때문에 마치 작은 섬만큼이나 거대한 몸체로 아무런 부담 없이
바다를 헤엄치듯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수. 베히모스라는 존재는
아라드의 모험가들과 연금술사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지금까
지도 많은 탐구꺼리가 되고 있었다.
 GBL신도들은 그 거대한 생물의 등 위에 있는 유적들에 관심
을 기울였고, 그 등 여기저기서 기묘한 생태계를 이룬 자연환경
을 조사했었다. 그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로터스. 제 8사도가 그 거대한 존재의 등에 올라타기 전에는.
 전이가 시작되자 베히모스의 등 위는 지옥으로 변했다. 덴드로
이드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난폭해졌고 GBL신도들은 로터
스의 제물이 되어 희생되었다.
 모험가들은 세뇌당해버린 GBL신도들을 잠재우고 로터스를 무
찌르기 위해 베히모스로 향했다. 그러기를 몇 달, 몇 년이 지난
지금. 로터스는 수많은 모험가들을 피해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
하고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베히모스의 등 뒤에도 약
간의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이상한 소문이 번지고 있었다.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 베히모스의 뱃속.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이미 한번 죽은 GBL신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많은 모험가들은 그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베히모스의 뱃속. 혈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모여
들고 있었다.

 

 “우웨에에에에엑.”

 천장에서 떨어지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소화액에 로하울러는
뱃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하지만 그가 게워낸 것에는 고형물
은 없었다. 쏟아진 것은 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 마셨던 위액이
섞인 다크 데킬라 뿐이었다.

 “아, 이거 미치겠네.”

 허리를 숙이고 깊게 한숨을 토해내던 로하울러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손에 들고 있는 캐넌을 쳐들었다.

 철커억.

 둥그런 원통에 강력한 흑색화약을 채워 넣어 폭발시켜 사용하
는 거너 특유의 무기인 캐넌. 그건 다른 총들과는 달리 총알대
신 화약의 불꽃과 압력으로 적을 공격하는, 비교적 근접전에서
사용하는 무기였다.

 콰앙!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로하울러에게 다가오던 GBL신도의 상
체가 순식간에 육편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그 GBL신도
는 하체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계속 로하울러에게 다가가려 했
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은 안 먹을 걸 그랬나. 머리도 아
파 죽겠고…우웁.”

 GBL신도의 허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수많은 구더기들의 모
습에 로하울러는 입을 가리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으…으으으…!”
 “이…이 망할 방해자놈…!”

 수십. 어쩌면 수백일지도 모른다. 전신을 가리는 보라색 로브
와 특이한 모습의 가면. 그건 분명 GBL신도의 모습의 기본이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 로하울러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는 그들은
분명 이상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로브가 심하게 찢어져 있었고 언듯언듯 드러
나 보이는 맨살에는 흰색의 구더기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게
다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악취는 분명 시체가 썩어
가는 냄새였다.

 “으읏, 지독하군요. 예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은데요?”

 로하울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언데드. 죽어버린 몸에 성불하지 못한 영혼이 스며들어 억지로
움직이는 괴물. 썩어가는 뇌는 고등한 생각을 하지 못하기에 그
들은 끝없이 희생자를 찾을 뿐 다른 행동은 하지 못한다. 좀비
나 할로우아이가 그런 대표적인 언데드 몬스터였다.
 하지만 저들은 보통 언데드와는 달랐다.

 “이…우리의…복수를 방해한…!”

 가느다란 몸체에서 아마 여성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녹색 로
브의 GBL신도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로하울러를 향해 뛰
어오더니 그대로 그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윽?”

 허리를 감싸 안은 팔은 끈적거렸고 뭔가가 꿈틀거리는 기분 나
쁜 감촉이 느껴졌다. 로하울러가 코끝에서 느껴지는 진한 썩은
냄새에 당황하며 그녀를 떨어트리려 할 때.

 “크아아아아!”

 수많은 GBL신도들은 자신들의 몸을 무너트리는 듯한 기세로
로하울러에게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시체 썩는
냄새 이외의, 로하울러에게 있어서 매우 익숙한 냄새가 풍겨 나
오고 있었다.
 그건 바로 화약의 냄새였다.

 “쯧!”

 다음 순간 로하울러에게 뛰어든 GBL신도들의 몸이 폭발하며
강렬한 섬광과 화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폭발의 중심
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로하울러는 가볍게 피를 뱉어내며 옷에
붙은 육편을 털어냈다.

 “그때에 비하면 좀 강해졌는데 이건…여전히 아프네요.”

 그는 쓰게 중얼거리며 등에 매고 있는 중화기 케이스를 회전시
켰다. 그러자 그 케이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염방사기가 그
의 손에 쥐여졌다.

 “근데 말이죠.”

 마치 마술과도 같은 솜씨로 화염방사기를 꺼내든 로하울러는
중화기 케이스를 다시 등에 짊어지며 자신의 앞을 향해 화염방
사기의 노즐을 겨눴다.

 “우리들 구면이란 거 알아요?”

 달칵.

 화염방사기의 방아쇠가 당겨지자 공기와 섞인 연료가 화염을
품고 앞으로 내뿜어졌다. 하지만 과거에 대주교였을, 주교였을,
혹은 보통 신도였을 GBL신도들은 그 화염의 압력에 몸이 찢겨
지고 부스러지면서도 로하울러를 향해 다가가려 하는 것을 멈추
지 않았다.

 “이…이이이이! 방해자노우쿠르르륵!”

 원한이 짙게 담긴 괴성을 내지르려 하던 GBL주교의 머리가
화염의 압력에 검게 타서 날아가 버리며 남은 목구멍이 기괴한
소리만을 토해냈다. 로하울러는 노즐을 여전히 열어놓은 채로
여기저기 고여 있는 소화액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서서히 뒷걸
음질쳤다. 

 “그래도 여긴 뭐 여전하군요.”

 보통 생물의 소화액과는 비교되지 않는 베히모스의 소화액은
밟기만 해도 장비가 부식되고 피부조차 녹아버린다. 과거에 자
신이 처음 혈옥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곳에 왔을 때 이들은 그런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로터스의 정신지배를 피하기 위해 혈옥에 숨어들어 생명조차
버린 채로 힘을 모으고 있는 GBL신도들. 그들의 목적은 단 하
나였다. 바로 로터스에게의 복수.
 하지만 로터스는 이미 쓰러진 상황이었다. 바로 모험가들에게.

 “크아아아아! 마셀러스니이이임!”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면서 재가 되어 흩어지는 GBL신도를
바라보던 로하울러는 화염방사기를 거뒀다. 반쯤 가려진 그의
표정은 잘 읽을 수 없었지만 그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GBL신도들의 분노는 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결국 그 갈 곳
없는 분노는 로터스를 쓰러트린 모험가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알리가 없지. 멍청이들.”

 스산하다 못해 싸늘한 말투. 루비나 엘시리스가 지금 로하울러
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었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자신들의 동료에게. 심지어 적에게도 장난스럽게
말을 걸며 언제나 대충대충, 심각하지 않게 행동하던 로하울러
가 아니었다.

 “크와아앗!”

 그때 막 바닥에서 튀어나온 손이 로하울러의 다리를 잡았다.

 “칫, 이런…!”

 그 뒤를 따르듯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몇명의 GBL신도들의
모습에 그는 외쳤다. 자신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의 이름을.

 “레텐!”

 순간 그의 하반신만큼이나 두꺼운 두개의 팔이 바닥에서 튀어
나오며 GBL신도들의 몸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잘했습니다. 레텐.”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로하울러는 자신의 앞에서 반쯤
몸을 드러내고 있는 반은 토끼, 반은 두더쥐인 듯한 크리쳐를
칭찬했다. 그의 웃음에 답하듯 녹색의 할파스인 레텐은 그 빨간
눈을 빛내며 키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아, 그럼.”

 로하울러는 바닥에 낙하한 후 부들거리며 팔을 쳐드는 그
GBL신도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 차냈다. 그리고 다시 평소의 유
쾌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좀 더 놀아보죠?”

 연료가 떨어진 화염방사기는 케이스에 수납되었고 동시에 순식
간에 또 다른 중화기가 튀어나왔다.
 신속한 중화기의 교체는 런처의 기본사항. 또한 모든 런처가
쓰는 기술이기도 했지만 그의 상황 판단능력만큼은 아무도 가르
쳐주지 않은 그 만의 기술이었다.
 아무리 런처가 평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의 수준이 될 때까지 살아온 런처라면 그동안 쌓여온 커리어.
경험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 된다.

 키르르르르륵!

 런처가 가장 처음에 드는 기본적인 중화기 M-137개틀링건.
하나로 묶여진 여섯 개의 총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그리고―

 “뭡니까! 그 원한이라는 게 겨우 이 정도였어요?”

 단 한발만으로도 인간의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대구경의
탄환이 초당 3발씩 튀어나간다. 몇 발의 총알은 운 좋게 바닥에
틀어박히며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GBL신도들에게 있어
서 그건 별로 위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 몇 발의 총탄을 제외한 나머지 총탄들은 여지없이 그들의
전신을 꿰뚫어 썩은 내장과 피를 토해내게 했으니까.

 “크아아아아! 모든 걸 다 날려버리겠다!”

 그때 노란색 옷을 입은 GBL신도가 괴성을 내지르며 칼을 휘
둘렀다. 그러자 그가 가지고 있는 미세한 의식이 만들어낸 마력
의 충격파가 그의 몸 주위를 휘감았고, 순간 그의 몸 주위에 있
는 다른 신도들과 함께 로하울러의 몸 또한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다른 GBL신도들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이미 로하울
러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험가들
이 익히고 있는 일종의 낙법인 퀵스탠딩이었다.

 “레텐! 어퍼컷!”

 막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향해 달려들던 여신도의 발아래에
서 튀어나온 주먹이 그녀의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여유롭게 일
어나서 가볍게 옷을 털고 있던 그는 자신의 앞으로 떨어지는 여
신도의 복부를 무릎으로 찍어 다시 공중으로 차올렸다.

 “바베큐!”

 스타일리쉬라고 불리는 천계인 특유의 체술의 하나. 젝스파이
크에 의해 공중으로 차올려진 여신도의 전신에 개틀링건에서 뿜
어져 나온 대구경이 탄환이 틀어박혔다.

 투가가가각!

 순식간에 그 형체조차 사라져버린 GBL여신도에게서 눈을 땐
로하울러는 재빨리 개틀링 건을 수납하며 또 다른 중화기를 꺼
내들었다.

 “레이저 바주카!”

 크리스탈 실린더 안에 빛나던 광자가 해방되었다. 물리적인 입
자를 가진 가느다란 레이저가 앞으로 뻗어나가며 그 선상에 있
는 모든 존재에 커다란 구멍을 깎아냈다.

 “어디보…읏?!”

 그는 신체의 자유를 잃고 쓰러져가는 GBL신도들의 끝에서 가
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GBL주교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재빨
리 몸을 낮추고 앞을 향해 미끄러졌다.

 “크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앗!”

 GBL신도는 자신의 칼이 허공을 가르자 분노에 찬 괴성을 내
질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런 그들의 귀에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아, 정말 달라진 게 없군요.”

 저 멀리로 몸을 피한 로하울러가 잔뜩 모여 있는 GBL신도들
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선가 공기를 찢는 듯한 울
림이 들려왔다.

 키이이이이이이잉―!

 그 울림은 GBL신도들에게도 분명히 들렸다. 하지만 그들은 아
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커밍, 파이어!”

 순간 베히모스의 가죽으로 되어있는 천장이 뚫리며 흰 몸체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깊은 던전에서, 어떤 곳에서 호출해도 사용
자가 원하는 좌표로 정확히 내리꽂히는 런처 고유의 무구이자
최강의 송곳니.
 그 기둥. 양자폭탄은 바닥에 내리꽂히는 순간 강렬한 광자를
사방으로 내뿜으며 주위의 모든 사물을 찢어발겼다.

 콰아아아앙!

 급격히 부풀어 오른 공기가 요란한 굉음을 낸 다음 순간. 로하
울러는 그 자리에 있던 신도들의 모습이 깨끗이 사라진 것에 빙
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보자. 이쪽은 대충 정리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
였다.

 “마셀러스씨가 있는 방은 이쪽이었던가?”

 그와 만난 것도 벌써 몇달 전. 하지만 좀 더 썩었단 것 이외에
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GBL신도들을 보고 있자면 그 역시 예
전과 다름없을 것 같았다.
 로하울러 험드럼. 다른 이름 있는 모험가들에 비하면 별로 알
려지지도 않은 평범한 런처는, 혈옥을 떠돌고 있는 망령들의 대
주교를 찾아 깊은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레슬리 베이그란스.
 과거에 거대생물 베히모스의 등 위에서 초고대문명을 찾아낸
인간은 아마 그 혼자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적
에 감화되어 베히모스와 함께 전 대륙을 떠돌며 세계 각지의 지
식들을 끌어 모아 궁극의 지식을 완성하려 한 인간은 그 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가 사망한 후에도 그가 설립했던 GBL교는 그를 신
격화해 결국 일종의 종교단체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들은 궁극의
지식을 종교적인 신으로 삼고 GBL교를 유지하며 전 세계에 이
름을 떨치는 유명한 단체로 성장했다.
 제 8사도. 로터스가 베히모스의 등 위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만약 레슬리 베이그란스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참혹한 일에 어
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실상 오필리아를 제외한 모든 GBL교의
신도들은 모두 로터스에 의해 미쳐버려 그를 따르고 있고 빛나
던 GBL의 모든 유산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이 상황을.

 “레슬리 베이그란스님….”

 혈옥의 깊숙한 곳. 도저히 살아있는 생물이 들어올 수 없는 그
깊숙한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GBL교의 로브와 가면을 쓰
고 있는 그는 다른 신도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거의 자신의 의지를 가지지 못하는, 복수라는 일념 이
외에는 다른 생각조차 하기 힘든 언데드로 변해버린 GBL신도
들은 그의 주위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고 있었다.

 “저주스러운 로터스…!”

 만약 그가 없었다면 GBL신도들은 GBL교를 무너트리고 지배
한 저주스러운 로터스에게 조정당하며 허무하게 살해당했을 것
이다. 만약 그가 금단의 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허무하게 살
해당한 신도들은 원한을 풀지도 못하고 베히모스의 등 위에서
썩어갔을 것이다.
 
 “우리는….”

 되살아난 GBL신도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인격을 유지하고 있
는 자. GBL교의 비밀조직인 블러드 퍼지의 수장인 심판자 마셀
러스는 팔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반드시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복수를!”

 그때 마셀러스의 썩어가는 눈이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빛이라
고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 이 혈옥의 깊숙한 곳에서 흰색의 빛이
피어오르는 듯한 그런―.
 
 피유유유유융!

 단순한 가시광선조차 한 점으로 모으면 그 열로 종이를 태울
수 있다. 극도로 뭉쳐진 광자[光子]는 마치 검과 같은 날카로움
과 그 앞을 가로막는 어떠한 존재도 꿰뚫어버리는 에너지를 품
는 한 자루의 창이 된다.
 어지간한 인간의 몸통 굵기의 그 ‘창’은. 순식간에 무릎 꿇고
있는 GBL 신도들의 몸을 불태우며 꿰뚫었다. 아슬아슬하게 그
광자의 창을 피해낸 마셀러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꿈틀거
리며 몸을 일으키는 GBL신도들과 함께 저 멀리에 서 있는 남
자를 노려보았다.

 “누구에게 복수를 한단 말이죠?”
 “네놈은!”

 마셀러스의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저 눈을 가리
는 푸른 머리칼은 본 적이 있었다. 저 등에 역십자 형태를 이루
고 짊어져 있는 중화기 케이스와 가죽 케이스 또한 본적이 있었
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천계의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레이
저 라이플 또한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썩어가는 뇌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다.

 “이 저주받을 모험가 놈―!”

 그의 분노에 반응하듯 바닥이 갈라지며 잠들어 있던 GBL신도
들의 몸이 솟아올랐다. 오직 복수. 그 단 하나의 감정과 목적만
을 가진 그 죽은 시체들은 손을 앞으로 뻗어 적을 붙잡으려 애
쓰며 앞으로 걸었다.

 “아, 그거 예전에는 정말 무서웠지만 말이죠….”

 붉은 화염이 방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거의 무너져 내리
던 그들의 육체는 섭씨 수천도의 화염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않
았다.

 크아아아아―!

 화염방사기의 화염이 길게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완전히 영혼
이 떠나간 육체의 조각들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저도 좀 좋은 중화기를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서 말에요. 이제
는 별로 안 무섭답니다.”

 로하울러는 빙긋 웃으며 화염방사기를 자신의 곁에 세웠다. 마
셀러스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 분노하듯
양 팔을 벌리며 외쳤다.

 “우리에게 복수할 기회마저 앗아간 이 비열한 모험가놈들…이
제 우리의 영혼마저 잠재우겠다는 것이냐!”

 로하울러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가에 걸려있던 웃음은 싹 사라져 있었다.

 “저기.”

 그는 화염방사기에 몸을 기댄 채 손에 들고 잇는 캐넌으로 자
신의 목을 툭툭 두드렸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말이죠. 대체 왜 모험가들에게 복수
를 하려고 하는 겁니까? 어차피 당신들이 복수를 하려 했던 로
터스는 우리의 손에 의해 퇴패했어요. GBL교가 멸망한건 유감
이지만 그건 우리 탓이 아니고. 결국 우리가 대신 복수를 해준
샘이기도 한데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우리가…!”

 마셀러스는 손을 옆으로 휘저으며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대체 복수를 위해 어떠한 고통을 감내했는지 알고 있
나? 살아있는 몸을 버리고 이 썩어버린 시체에 들어앉아 견디고
견디며 힘을 모은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냐는 말이다!
그런 우리가 견뎌서 얻어낸 이 힘으로 하는 복수가 아니면 의미
가 없다. 생애 마지막의 달콤한 복수로 영혼이 치유되고 안식을
얻을 기회를, 너희가 빼앗은 것이란 말이다!”

 그가 토해내는 열변에 로하울러는 침묵을 지켰다.
 금단의 비술을 사용한 것은 복수를 위해. 점점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영혼을 끝까지 잡고 있던 것 또한 복수를 위해.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신도들의 영혼들이 저주받은 썩은 몸을 걸치
고 있는 것도 복수를 위해.
 그의 열변은 상대방에게 이해를 호소하고 있는 듯 들리기도 했
다. 분명 보통 인간이라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고
통을 감수하며 복수를 하려 했기에 그 대상이 사라졌을 때 갈
곳 잃은 분노가 주위의 누군가를 향해 뿜어지려고 한다는 것은.

 “너 따위가 복수에 대해서 뭘 아느냐. 대체 너희는 무엇 때문
에 로터스를 쓰러트렸냐는 말이다! 그 어쭙잖은 영웅심 때문에?
누가 너희들에게 그럴 권리를 줬냐는 말이다!”
 “아.”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로하울러는 한숨이 섞인 말소리를
길게 토해내 마셀러스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여전히 분노한 듯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그를 향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려다.

 “이래서 천재라는 것들은.”
 “뭐, 뭐라고?!”

 로하울러의 표정은 냉랭했다. 그는 마셀러스와 그의 곁을 지키
고 있는 GBL신도들을 비웃듯 살짝 입 꼬리를 올렸다.

 “복수는 자신들의 손으로 해야 한다고? 웃기시네. 그건 너희들
의 자존심일 뿐이지. 엄청나게 잘나고 대단하신 그쪽 분들이 겪
은 굴욕감이 말야. 그 굴욕감을 풀 기회를 우리 같은 근본도 알
수 없는 모험가들에게 뺏겨서 징징거리고 있을 뿐이고.”
 
 조금의 이해조차 하지 않겠다는 듯한 냉소. 순간 약간의 이성
이 남아있던 모든 GBL신도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
다.

 “결국 너희가 지금 하는 짓은 병신 짓 이란거야.”
 “네오오오오오오오옴!”

 입을 다물고 있던 GBL신도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로하
울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몸이 찢겨지며 뼈
가 바스라졌지만 그들은 그 육체의 고통을 무시하며 눈앞의 적
을, 분노를 쏟아 넣을 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파바바박!

 하지만 로하울러는 피하지 않았다. 십여 자루의 단도가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의 아래에 있는 갑옷에 가로막혔고 몇 개의 단도
는 갑옷의 틈새를 뚫고 그의 몸 안쪽으로 깊숙이 박혀들었다.
 
 “뭐.”

 그는 웃었다. 그리고 의외로 너무나도 쉽게 자신들의 공격을
맞아버린 로하울러가 이상하다는 듯 웅성거리는 GBL신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다음 순간 중화기 케이스에서 여섯개의 긴 총신을 가진 개틀링
이 튀어나왔다. 중화기를 사용하는 런처가 배우는 제식훈련에
포함된 근접 전투술. 그 전투술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기술.
 
 빠아악!

 중화기는 자신이 뿜어내는 화력에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고 무
거운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근접전에서 휘둘러지는 중화
기는 귀검사들이 사용하는 둔기와도 닮아있었다.
 개틀링이 특유의 육중한 무게로 휘둘러 쳐지자 그에게 붙어있
던 GBl신도들이 일순간 뒤로 밀려났다. 로하울러는 잠시 멍하
게 있는 그들을 향해 개틀링의 총구를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성불은 할 수 있겠죠.”
 
 개틀링의 총구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썩어있는
GBL신도들의 몸이 조각조각 흩어졌다. 금지된 비술로 인하여
사그라드는 몸을 그릇삼아 겨우 담겨져 있던 영혼들이다. 그 비
술이 새겨진 그릇이 부서지자 영혼들은 더 이상 이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쿠오오오오―

 마치 거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로하울러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갑옷의 안쪽
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네 놈…일부러?”

 마셀러스의 의아한 중얼거림에 로하울러는 대답하는 대신 허리
를 폈다. 그리고 개틀링건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며 이를 드러내
고 씩 웃어보였다.

 “남은 건 당신 혼잔데요. 심판자 마셀러스씨.”
 “내가 바란다면 나의 동포들은 또다시 이 땅에 일어설 것이다.
내가 쓰러지지 않는 한 GBL교는 영원해…!”

 하지만 그는 누구도 불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꽤나 긴 침묵.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있던 둘 중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로하
울러였다.

 스윽.

 그는 몸에서 흘러나온 피에 젖어있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
고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붉은 피에 젖은 그의 머리카락은
손에 눌린 채 앞으로 되돌아오지 않았고. 마셀러스는 완전히 드
러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보통 천계인들은 가느다란 몸 선과 아름다운 얼굴이 특징이다.
하지만 로하울러의 드러난 얼굴에는 결코 아름답고 할 수는 없
을 짙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기묘하게 일그러진, 마치 폭탄의 압력에라도 찢겨져 나간 피부
는 짙은 갈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그리고 그 흉터가 가로지르는
곳에 있는 두 눈동자에는 마치 우유빛 막이 뒤덮여 있는 듯 흐
릿했다.

 “복수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고?”
 
 그는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땠다. 하지만 피에 젖은 머리칼
은 다시 그의 눈을 뒤덮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나? 평범한 인간이. 뼛속까지 평범해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인간이. 가족들. 친구들. 애인을. 시력의 절
반까지 빼앗기고 도시 한가운데 버려졌을 때 뭘 할 수 있는지?”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웃는 다기 보다는
일그러져 마치 고통을 참는 것 같았다.

 “손재주도 발재주도 없을 뿐더러 시력이 손상되서 레인저는 불
가능. 마력을 짜내는 재주가 없으니 스핏파이어도 불가능. 회로
를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지능도, 섬세한 기계를 만드는 손재주
도 없으니 메카닉도 불가능.”

 철컥.

 언제 꺼내든 것일까.
 슈타이어 중저격총. 사람의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몸체와 총신
을 가진. 거대한 몬스터와 전차를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구
가 어느 새 그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그래서 난 런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거라면 누구든, 착실
히 보통 인간으로서의 실력만 쌓아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로하울러는 그 총 끝으로 땅을 두드리자 그의 부름에 답하듯
붉은 눈의 할파스. 레텐이 살짝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다시 한번 쓰게 웃었다.

 “그래, 중화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내 힘이 아니지. 난 중화기
를 만들어내는 게 아냐. 총알조차 만들 수 없어. 내가 하는 건
단지 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 뿐이지. 이 크리쳐의, 레
텐의 힘도 결국 내가 쓰는 힘이 아냐. 레텐이 내 부름에 답해주
는 것 뿐이지”
 “네놈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거냐…!”

 마셀러스의 외침에 대항하듯 로하울러 또한 외쳤다.

 “왜 당신은 모험가들을 이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거지? 결국
그들은 도구로서 이용당하는 존재야! 제국에게, 사연이 있는 사
람들에게. 대가를 받는 대신 일을 처리해주는 존재들이라고!”
 “말했을 텐데! 복수는…!”
 “아아, 그래! 그 잘나신 자존심이 철철 넘쳐나다 못해 오만에
빠져드는 천재 씨에게는 이해 안 되는 소리겠지.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이루겠다고?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이런 상황이 되서도
그런 걸 따질 정신이 남아 있는거야?!”

 이제 발악하듯 외치고 있는 것은 마셀러스가 아니었다.

 “난 평범해서 당신 같이는 생각할 수 없어. 이 크리쳐! 중화기!
내 동료들! 냉정하게 따지자면 이건 전부 ‘남의 힘’이겠지. 하지
만 이건 내 힘이야!  내가 쓰기로 마음먹고, 쓰기 시작한 시점
에서 내 힘이라고!”

 아직 알콜의 기운이 온몸을 뒤덮고 있는 탓일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가쁘게 숨을 내뱉던 로하울러는 심호흡을 하
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중저격총을 들어 말없는 마셀
러스를 향했다.

 키릭.

 자체유도 작렬탄두를 사용하는 슈타이어 중저격총은 발사 후
미묘하게 각을 틀며 눈앞의 적의 몸에 틀어박힌다. 예리한 조준
도, 정밀한 사격도 필요 없었다.

 “당신이 그토록 섬기는 레슬리 베이그란스는 왜 GBL교를 만
들어서 신도들을 모집한거지? 이해나 사랑이니 하는 소리 다 집
어치우고 원론적인 걸 생각하라고. 결국 타인을 ‘이용한’거잖아.
그걸 ‘자신의 힘’으로 쓰기 위해서!”

 범인. 범골. 어떠한 재능도 없고 단지 평범한. 그리고 평범하게
살았어야 했던 이가 모험가가 되었다. 
 단지, 복수를 위해서.

 “대체 왜 당신들은 그런 쉬운 길을 택하지 못하고 이런…미친
길을 택한거지?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로하울러는 이를 갈며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몇 개월 전 이곳을 찾았던 로하울러는 이들이 뼛속깊이 복수를
원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섭게도, 같은 복수자로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영혼에 품고 있는 절망의 깊
이와 분노를.
 때문에 그 부탁을 듣고서 맨 정신으로는 이곳에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정신을 흐리게 하기 위해. 이들의 입장을 생
각치 않기 위해 뇌를 진한 알콜에 절여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다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다크 데킬라 두
병 분의 알콜이 그에게 남긴 건 자재할 수 없는 속마음의 외침
과 두통뿐이었다.

 “누가 날 처리하라고 부탁했나?”

 마셀러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로하울러는 대답
대신 눈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이 대답이 되었던 것일까.

 “그렇군.”

 마셀러스는 고개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와 같은 재능을 가지지 않은, 힘이 없는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그 아이는 ‘너’를 이용하기로 한건가. 그래, 네가 말
한 것처럼.”

 그 중얼거림에는 묘하게 독기가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웃기 시작했다.

 “와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핫!”

 심판자 마셀러스. GBL교의 비밀조직인 블러드 퍼지의 수장.
지금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GBL교의 모든 지식을 그 머리에
품고 있는. 죽어 가고 있는 복수자는 울부짖듯 광소했다.
 그리고 잠시 후 웃음을 멈춘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하는 듯 하더
니 손에서 푸른빛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모험가
를 향해서 다시 독기가 충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난 너를 용서할 수 없다.”

 그의 모습에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로하울러는 얼굴을 일그러트
리며 슈타이어 중저격총을 쳐들었다.

 “마셀러스! 당신 진짜…!”
 “네 이름은 뭐지? 모험가.”

 그 차분한 목소리에 로하울러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
다. 하지만 곧 입을 열어 주저하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로하울러…험드럼.”

 그의 대답에 마셀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하울러[Lawhowler]…너 또한 심판자인가.”

 쿠웅!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그의 앞의 땅이 갈라지며 매마른
손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곁에는 몇 십이나 되는 GBL신
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셀러스는 이를 악무는 로하울러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나를 설득하려 하지마라! 나를 납득시키려 하지마라! 나는 심
판자 마셀러스. GBL교의 모든 지식을 이 몸에 품고 있는 진정
한 GBL의 마지막 사도!”

 그의 외침에 반응하듯, GBl신도들은 로하울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언데드의 행진이 시작됐다.

 “쯧!”

 로하울러가 내갈긴 슈타이어 중저격총의 작렬탄투가 맨 앞에
서 있던 신도의 몸에 틀어박히나 싶더니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그와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신도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재빨리
중저격총을 케이스에 집어넣은 로하울러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
기에 유리한 무기, 화염방사기를 꺼내들어 손에 쥐었다. 아직
연료의 잔량은 충분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마셀러스는 양 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로하울러를 향해 외쳤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너의 말을 진리라
고. 법이라고 외치고 싶다면! 나를 쓰러트려라! 이 나를 가루조
차 남기지 말고 불태워라! 나의 의지는 너희 모험가의 가소로운
칼날 따위에 사그라들지 않는다! 로하울러 험드럼!”

 화염방사기를 들고 있는 로하울러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그런가.’

 로하울러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심판자 마셀러스. 그는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금단의 기술에 희생이 된 GBL신도들의
안락사를.

 “정말로….”

 다시 쳐든 그의 얼굴의 반을, 그의 몸에서 나온 피에 젖은 머
리칼이 가리고 있었다. 그는 냉소하지 않는, 평소와 같은 작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앞을 향해 겨누고 있던 화염방사기를 중
화기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바보같군요.”

 눈앞에 적들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얼굴에서는 여유가 가
시지 않았다. 그는 등 뒤의 가죽 케이스에서 다섯 개의 작은 빛
나는 조각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색도 가지지 않은 그 큐브조각
들은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세틀라이트 커넥트.”

 팔을 들어올리자 그 큐브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그의
명령을 일정한 주파수의 전파로 바꾸어냈다. 그리고 전파는 자
신의 앞을 가로막는 어떠한 물질도 그대로 통과하며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피잉.

 이윽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선으로 ‘무엇인가’와 연결된 로하
울러는 ‘그것’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연결, 목표지정, 좌표입력, 에너지 충전.
 복잡한 절차나 기술 따위는 필요 없다. 단지 그것은 인증받은
런처가 쓸 수 있는 최강의 중화기일 뿐.

 “마지막으로 보여드리죠. 뼛속까지 평범한 범인인 제가 빌려
쓰는 ‘남의 힘’이라는 걸.”

 따악!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튀겨진 순간.

 뿌오오오오오오옷!

 베히모스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꿰뚫는 것이 아니다. 런처의 개인용 레이저 라이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구경, 대용량의 크리스탈 실런더에서 압축
된 광자가 마치 신의 분노처럼 하늘에서 직각으로 내리꽂힌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그 다섯 개의 광자의 기둥이 강렬하게
빛나며 주위에 태양과도 같은 빛을 내뿜어냈다.
 하지만 그 광자의 폭격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앗!”
 “모…모오오오오옴이이잇!”

 그 광자의 기둥은 마치 레이저 메스와 같이 베히모스의 거죽을
갈랐다. 새틀라이트 빔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적들을 자동적으로
추격하며 그들의 존재 자체를 티끌조차 남기지 않고 찢어 태워
냈다.

 “크으으으으으!”

 다섯 개의 새틀라이트 빔에 휩싸인 마셀러스가 고통을 참는 듯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보통 신도들이라면 이미 완전히 으스러졌
을 테지만 그의 몸은 아직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오오오! 이 정도로오오옷! 내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
다아아앗! 이 나느으으으은!”

 빔의 열기에 바닥조차 붉게 달아오르는 상황이었지만 마셀러스
는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는 버티고 있었다. 왜냐면 그것이 바
로 그의 힘과 분노. 집착. 자신의 손으로는 절대로 끊어낼 수
없는 자존심이자 영혼의 낙인이었으니까.

 철컥.

 눈앞에서 들려온 소리에 마셀러스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
느새 다가온 것일까. 강렬한 빛줄기에 휩싸여 있기에 이 밖의
상황이 제대로 보일리가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로하울러라 불리는 모험가는. 자신의 눈앞에 캐넌을 겨
눈 채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솔직히, 마셀러스씨 당신.”

 마셀러스는 이를 악물며 품속에서 세 자루의 단도를 꺼내들려
했다. 하지만 그 단도마저도 새틀라이트 빔에 의해 순식간에 기
화해버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로하울러는 빙긋 웃었다.

 “별로 싫진 않았습니다.”

 가면 안의 마셀러스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알 수는 없다.

 “……….”

 로하울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알 수 있었다.

 “아디오스.”

 로하울러는 부서져내리는 마셀러스의 가면 아래에서 보이는 그
의 마지막 입술을 읽으며 캐넌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
 
 유일한 GBL교의 마지막 생존자. 로터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그 복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려 하는 붉은 양갈래 머리의 소
녀는, 막 마가타에서 내리는 모험가를 향해 뛰어갔다.
 진회색의 케이브 상의를 걸치고 있는 그 블래스터는 자신을 향
해 뛰어오는 소녀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발을 멈췄다.

 “야아, 마중까지 나와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오필리아양.”
 “아…그, 그게.”
 
 태연한 그의 말투에 오필리아는 약간 우물거리며 로하울러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태도에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막 숨을 들이켰다.

 “음, 마셀러스씨가 또 모험가들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겠죠.”

 숨을 깊게 들이켰던 오필리아는 말허리를 잘리자 잠시 숨을 멈
추고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곧 안도인지 실망인지, 아니면 괴
로움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고맙습니다. 로하울러씨.”
 “아니, 뭐어. 인사는 됐고요. 그럼 약속했던….”

 오필리아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로하울러의 손에 움찔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기. 그건….”
 “로오~형~아아아~”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여린 목소리에 로하울러와 오필리아
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활기찬 얼굴로 손을 흔들
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붉은 머리의 청년과 그의 뒤에서 뚱
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는 작은 마계소녀. 그리고 그 둘의 뒤에
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어깨를 가만히 누르고 있던 손이 치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오, 루비군. 괜찮아요? 엘시양이 안괴롭히던가요?”
 “괴롭힌 건 잘 모르겠구‥여기 혹. 아파….”
 “야아, 이거 아프겠는데요.”

 그때 그 푸른 눈동자의 마족 소녀가 루비를 토닥거리는 로하울
러를 째려보며 툴툴거리듯 말했다.

 “일정이 바쁘다구. 그런 바보짓 하고 있을 시간 없다구.”
 “음, 스톰패스까지는 먼 길을 가야할테니까. 어쨌든 지금부터
라도 움직이면 내일쯤에는 닿겠지.”

 애쉬마일의 말에 로하울러는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랬죠 참. 제국에서 받은 의뢰니 시간을 끄는 건 조금
곤란하겠죠.”
 “그래에, 너 때문에 하루라는 시간을 버렸잖아. 다른 모험가들
이 다 처리해버리면 어쩔거야? 그러면 보수고 뭐고 없을지도 모
른다구?”

 그런 엘시리스의 말투에 루비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남아 도는데에. 괜찮아요오.”
 “뭐얏! 뭐가 괜찮다는거야! 이 바보! 멍청이! 꺽다리!”
 “히이이잉~! 아파아~.”

 애쉬마일은 루비의 뒤를 쫒아 달리는 엘시리스를 곤란한 눈으
로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 참.”
 “하하, 애들은 저러면서 크는 거니까요. 아, 오필리아양?”

 그런 일행의 모습에 당황한 듯 움찔거리던 오필리아는 로하울
러가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자 약간 움찔거리며 그를 마주봤다.

 “일이 그렇게 되서 말이죠. 데이트는 나중에 하죠.”
 “예? 아니, 하지만….”

 그는 오필리아의 말을 기다리는 대신 앞으로 걸어가 투닥거리
고 있는 루비와 엘시리스의 가운데에 끼어들었다.

 “자아 자아, 빨리 갑시다.”
 “꺅! 어딜 만지는거야! 이 변태!”
 “뭐 어때요오, 부비적거리는거 좋잖아요오.”
 “이봐들, 이런데서 소란피우면 남들에게 폐가 된다고.”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그 넷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예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모습으로.

 “아….”

 그런 넷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오필리아는 어째서인지
눈가에 차오른 눈물을 재빨리 로브의 소매로 훑었다. 로터스에
게 잃어버린 가족과 동료들의 모습이 그들의 뒷모습에서 얼핏
보인 것 같았다.

 “저, 저기. 로하울러님?”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걸 들은 걸까. 로하울러는 뒤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빙긋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일행과 뒤얽혀 인
파 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든 데이트를 무마해보려 하던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
때문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에 멍하게 부둣가에
서 있던 오필리아는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당신도 상처받은 사람이었나요.”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데이트를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족이 사라진, 그들에게 영면을 선물하고 싶어 한 자신
의 심정을 알아줬던 것뿐일지도,

 “데이트는…없겠군요.”

 오필리아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 손을 마주잡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기도하듯, 자신의 진심을 담아 작게 중얼거렸다.

 “가시는 길에 위대한 푸른 진리가 함께 하시길.”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이 영원히 행복하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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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진군 | 2008/05/12 04:21 | 소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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